젠틀맨(The Gentlemen, 2019)은 말 그대로 스타일로 무장한 악당들의 우아한 난장판이다. 우리는 악당 하면 흔히 무자비하고 폭력적이며 다소 촌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가이 리치 감독은 그런 편견을 가뿐히 뒤집는다. 그는 범죄와 액션, 그리고 블랙 유머가 교묘하게 버무려진 이 영화 속에서 누구보다 품위 있게, 누구보다 깔끔한 방식으로 서로를 배신하고 속고 속이는 악당들을 등장시킨다. 그렇게 이 영화는 ‘젠틀맨’이라는 이름과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매력적인 악당’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1. 복잡한 플롯 위에서 춤추는 인물들
이 영화는 미국 출신으로 영국에서 대마초 사업을 운영하는 미키 피어슨(매튜 맥커너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은퇴를 결정한 미키가 자신의 사업을 매각하려 하자 런던 범죄 조직들이 이를 노리면서 얽히고설킨 음모가 시작된다. 가이 리치는 여기서 단순히 ‘나쁜 놈들’의 총격전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영화 전체가 마치 정교한 ‘체스 게임’처럼 펼쳐진다. 모든 캐릭터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다음 순간 서로의 등을 찌른다. 특히 플레처(휴 그랜트)가 탐정이자 이야기꾼으로 등장해 영화의 흐름을 능청스럽게 풀어놓는 방식은 기발하다 못해 신선하기까지 하다. 그가 교활한 미소를 띠며 스토리를 풀어나갈 때 관객들은 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의심하면서도 묘하게 그의 유혹적인 어조에 빠져들게 된다.
2. 젠틀맨답게 잔혹한 유머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바로 리치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다. 잔혹한 장면조차 기발하고 위트 있게 표현되어 있다. 마약 범죄를 다루고 있지만 과도하게 잔인하거나 폭력적이지는 않다. 대신, 리치는 폭력과 위협마저 우아한 품위로 포장한다. 예컨대, 누군가가 협박을 당하거나 협상을 펼치는 장면에서도 대사는 최대한 점잖게 유지되지만 사실 그 대사들은 지독히 잔인하다. 리치 감독이 창조한 세계에서는 ‘젠틀맨’들이 상대의 목을 따기 직전까지도 넥타이를 고쳐 매는 품격을 잃지 않는다. 이는 영화에 통쾌함과 동시에 독특한 아이러니를 제공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3. 독특한 스타일과 세련된 영상미
리치 감독은 이 작품에서 특유의 시각적 스타일을 한껏 발휘한다. 스타일리시한 편집과 역동적인 장면 전환은 다소 복잡할 수 있는 스토리라인을 관객들이 쉽게 따라가도록 도와준다. 각 캐릭터마다 뚜렷한 의상 스타일도 인상적이다. 매튜 맥커너히는 클래식하고 세련된 슈트로 무장해 마치 현대판 왕처럼 등장하며 콜린 패럴(코치 역)은 트레이닝복과 안경 하나로 캐릭터를 유머러스하게 완성해낸다. 무엇보다 각 캐릭터가 지닌 개성을 패션 아이템 하나하나에 절묘하게 녹여내면서 영화는 시각적으로 더욱 풍부해진다. 또한, 절묘한 음악 선곡도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려 관객이 스타일리시한 난장판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즐기게 한다.
4. 휴 그랜트와 콜린 패럴, 배우들의 절묘한 변신
특히 주목할 만한 배우는 바로 휴 그랜트와 콜린 패럴이다. 휴 그랜트는 그간 로맨틱 코미디에서 봐왔던 로맨틱한 남성 이미지를 완전히 깨뜨리고 능청스럽고 교활한 정보원 플레처로 변신해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의 대사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는 우리가 익히 알던 그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이며 놀라운 신선함을 제공한다. 콜린 패럴은 단순한 조연 이상의 존재감을 뽐내며 자신만의 독특한 리듬감과 코믹한 말투로 영화의 블랙 유머를 책임진다. 특히 불량 청소년들을 훈육하는 과정에서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연기는 이 영화의 유머 코드와 캐릭터적 다양성을 완벽히 보완하고 있다.
5. 품격의 역설,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영화 《젠틀맨》에서 가장 창의적인 지점은 범죄자들이 선과 악의 경계를 아주 품격 있게 허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대부분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그들의 행동과 말을 응원하게 된다. 그들은 예의를 갖추면서도 철저히 이기적이며 때론 폭력적이면서도 매력적이고 결국 모든 인물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리치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악당에게 호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우리 안에 숨겨진 원초적인 욕망이나 사회적 규범을 부드럽게 무너뜨리고 싶은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6. 총평: 악당에게 품위를 부여한 놀라운 재능
이 작품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즐거움은 비단 이야기의 긴장감이나 반전에서 끝나지 않는다. 매 장면마다 느껴지는 독특한 스타일과 유머, 그리고 잔혹함과 품격의 조화는 ‘악당’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는다. 감독이 그린 세계는 우아하면서도 치명적이고 잔인하지만 결코 품위를 잃지 않는다. 마치 세상 모든 범죄자들이 정장 차림으로 에티켓을 갖추고 칼을 휘두르는 기이한 연회장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런 면에서 《젠틀맨》은 범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우아한 폭력'이라는 모순적 아름다움까지 느끼게 해주는 창의적 작품이다. 가이 리치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가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선과 악, 품격과 잔혹함을 예술적으로 뒤섞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물은 우리의 내면을 은밀하게 유혹하며 매력적인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결국, 이 영화는 악당이 품격을 갖추면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 동시에 그 매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아이러니하면서도 매혹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은 이 품격 있는 악당들에게서 좀처럼 눈을 뗄 수가 없다.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묘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