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영화라는 인식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세계 영화 시장에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한 바후발리: 시작(Baahubali: The Beginning). S.S. 라자마울리 감독의 이 작품은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 신화적 상상력과 현대적 영화 기술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 걸작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인도판 반지의 제왕'이라는 표면적 비교를 뛰어넘는 인도 고유의 문화적 DNA가 녹아든 새로운 판타지 장르의 탄생이라고 생각된다.
물과 산의 서사, 자연의 영웅
영화는 아기를 구하려는 한 여인의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시작한다. 폭포수와 맞서는 이 장면은 단순한 오프닝을 넘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물'이라는 모티프(motif)의 시작점이다. 바후발리가 거대한 시바 신상을 운반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물의 힘, 그리고 마지막 전투에서 보여주는 폭포 아래의 결전까지 - 물은 이 영화에서 생명과 죽음, 정화와 파괴의 양면성을 상징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다. 서양 판타지가 종종 자연을 정복하는 영웅을 그린다면 바후발리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영웅을 그린다. 그가 산을 오르는 장면은 단순한 장애물 극복이 아닌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성장을 의미한다. 이는 인도 철학의 핵심인 '아트만(개인의 영혼)과 브라만(우주의 영혼)의 합일'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카스트를 초월한 영웅, 현대적 해석
영화는 겉으로는 왕권 다툼을 그리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인도 사회의 카스트 제도에 대한 은유적 비판이 담겨 있다. 바후발리는 혈통으로는 왕족이지만 그의 성장 서사는 전형적인 '낮은 출신'에서 시작한다. 그가 마헨드라에서 바후발리로 성장하는 과정은 출신을 초월한 인간 내면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 캐릭터들의 묘사다. 전통적인 인도 영화의 여성상을 뛰어넘어 시바가미와 데바세나는 각각 지혜와 용맹의 상징으로서 영화의 핵심 축을 담당한다. 특히 데바세나의 전사적 면모는 현대 인도 사회에서 변화하는 여성의 역할을 반영한다.
기술과 예술의 조화
바후발리의 시각적 성취는 단순히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인도 전통 미술과 현대 CGI의 독특한 융합에 있다. 마히쉬마티 왕국의 건축물은 남인도 드라비다 양식과 판타지 요소를 결합했으며 전투 장면은 인도 고전 춤의 리듬감을 차용했다. 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시각적 문법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인도 고유의 미학적 관점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파르바티 성에서 바후발리와 카타파가 함께 싸우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카메라의 유려한 움직임과 두 배우의 완벽한 케미스트리는 인도 전통 무술인 칼라리 파야투(Kalari Payattu)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문화적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다.
음악: 감정의 풍경
M.M. 키라바니의 음악은 이 영화의 숨은 주인공이다. 특히 ' 단달라야(Dandalayya)' 곡은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 스토리텔링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가사의 의미, 선율의 변화, 심지어 사용된 악기까지 모두 데바세나의 내면 변화와 상황의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또한 '마만티' 같은 전투 장면에서의 음악은 단순한 긴장감 조성을 넘어 인도 고전 음악인 카르나틱 음악의 탈라(Tala, 리듬 패턴) 구조를 활용해 전투의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이는 서구 영화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다.
서사의 미완성, 새로운 시작
영화가 '왜 카타파가 바후발리를 죽였는가?'라는 질문으로 끝나는 것은 단순한 상업적 전략을 넘어 인도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구조를 차용한 것이다. 마하바라타가 여러 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다르마(의무)와 카르마(행위)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듯 바후발리 역시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충성과 배신, 의무와 사랑 사이의 복잡한 갈등을 다룬다.
이 미완의 결말은 관객에게 다음 편을 기다리게 하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우리 삶의 복잡성과 선택의 어려움에 대한 은유다. 삶은 때로 명확한 해답 없이 계속되며 우리는 그 불확실성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야 한다.
결론 - 인도 영화의 새로운 이정표
"바후발리: 시작"은 단순한 오락영화를 넘어 인도 문화와 철학의 정수를 현대적 영화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그것은 인도 영화가 더 이상 '볼리우드'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세계 영화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보여준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다양한 문화적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볼 때 더 풍부한 영화적 경험이 가능함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