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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angle of Sadness』- 풍자의 칼날 아래서 무너지는 계급의 환상

by reward100 2025. 3. 12.

 

Film, Triangle of Sadness, 2022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Triangle of Sadness』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202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웃음과 불편함, 그리고 날카로운 통찰력이 교차하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모델 칼(해리스 디킨슨)과 인플루언서 야야(샬비 딘)가 럭셔리 크루즈에 초대받으면서 시작되는 이 여정은 결국 섬에서의 생존이라는 문명의 원점으로 귀결된다. 이 과정에서 외스틀룬드 감독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모든 계급적 질서를 뒤집는 통쾌한 실험을 감행한다.

우아함의 표면 아래 숨겨진 추악함

영화는 표면적 아름다움이 어떻게 내면의 공허함을 가리는 도구로 작용하는지 보여준다. '눈썹 사이의 삼각형' 즉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라는 제목부터가 모델들이 보톡스로 교정해야 하는 미간의 주름을 가리키는데 이는 완벽해 보이는 외관 뒤에 숨겨진 불안과 우울을 상징한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패션 업계의 위선적인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타고난 외모를 판매하는 산업"이라는 외피 속에서 모델들은 결국 자신의 신체를 상품화하는 시스템의 희생양에 불과하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이러한 메시지를 지루한 설교가 아닌 불편함을 유발하는 코미디로 풀어낸다는 점이다. 크루즈 선장(우디 해럴슨)과 러시아 사업가(사샤 바론 코헨) 사이의 마르크스와 레이건에 관한 대화는 좌우 이념의 극단적 대립을 희극적으로 풍자하며 이 모든 논쟁이 결국 물질적 풍요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허한 지적 유희에 불과함을 꼬집는다.

구토의 정치학: 불편한 카타르시스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선장의 만찬' 장면은 풍자의 정점을 찍는다. 호화로운 요트에서 풍랑을 만난 부유층 승객들이 집단적으로 음식을 게워내는 장면은 단순한 스캐톨로지컬(skatological) 유머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가진 자기파괴적 본성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부와 사치에 취해 있던 승객들이 결국 자신들의 체내에서 소화하지 못한 음식들을 게워내는 이 장면은 소비사회의 과잉이 결국 인간의 존엄성마저 앗아가는 순간을 포착한다.

"무제한 칵테일을 약속한 요트에서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내장까지 토해낸다. 이보다 더 직접적인 자본주의 비판이 있을까?"

특히 이 장면에서 러시아 비료왕이 "Shit is good for you!"라고 외치는 대사는 자본주의가 자신의 배설물마저 상품으로 포장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불결함과 우아함, 혐오와 욕망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이 순간은 영화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복된 계급질서: 생존의 섬에서

요트가 침몰한 후 무인도에 도착한 생존자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계급 질서는 영화의 가장 신선한 전환점이다. 이전까지 화장실 청소부였던 아비게일(돌리 드 레온)이 생존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권력자로 부상하는 과정은 계급이란 결국 사회적 합의와 생존 환경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허구적 구조임을 보여준다.

섬에서의 생활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와 권력 관계를 드러낸다. 음식을 제공하는 자가 권력을 가지고 성적 매력은 새로운 화폐가 된다. 이 과정에서 아비게일이 보여주는 권력의 남용은 기존 지배계층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외스틀룬드 감독은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 시선을 드러낸다. 권력의 본질은 그것을 소유한 계급이 아닌 권력 자체의 속성에 있다는 냉정한 관찰이다.

상품화된 아름다움과 진정성의 부재

영화 속 모델 커플 칼과 야야의 관계는 현대 소셜미디어 시대의 왜곡된 관계성을 보여준다. #nofilter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완벽하게 연출된 사진을 올리는 야야의 모습은 진정성이라는 가치마저 상품화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남성 모델 칼이 여성 모델들보다 적은 돈을 받는 상황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젠더 권력관계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외스틀룬드 감독은 이들이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아니면 서로의 '마켓 밸류'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지 모호하게 표현함으로써 상품화된 사회에서 진정한 관계의 가능성에 의문을 던진다. 요트가 침몰하고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순간에도 야야가 소셜미디어용 사진을 찍으려 하는 장면은 디지털 시대의 과잉 자기표현이 얼마나 비인간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론: 사라지지 않는 슬픔의 삼각형

영화의 마지막 장면, 생존자들이 호텔을 발견하고 다시 기존의 계급 질서로 돌아갈 것을 암시하는 결말은 인간 사회의 순환적 비극을 보여준다.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 있더라도 인간은 결국 '정상'이라고 믿는 질서로 회귀하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는 변화의 가능성과 동시에 변화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양가적 메시지다.

"눈썹 사이의 삼각형은 보톡스로 제거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 구조 속에 깊이 새겨진 슬픔의 삼각형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는 불편함을 유발하는 유머와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통해 관객에게 자신의 위치와 특권에 대해 되돌아보게 만든다. 영화는 어떤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하고 모순적인지를 보여줌으로써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깊은 불안과 성찰이 자리하고 있다. 현실의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