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산골 소녀와 슈퍼 돼지의 특별한 유대,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도전
봉준호 감독의 2017년 작품 <옥자 (Okja)>는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소녀 미자(안서현)와 글로벌 식품 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이 '슈퍼 돼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녀에게 맡겨 기른 특별한 유전자 조작 돼지 옥자의 가슴 뭉클한 우정을 그린 영화이다. 겉으로는 소녀와 돼지의 따뜻한 교감을 그린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거대 자본의 비윤리적인 동물 착취와 환경 파괴, 그리고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메시지를 봉준호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와 예측 불허의 스토리텔링 속에 교묘하게 녹여낸다. 옥자와 미자의 순수한 사랑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앞에서 더욱 숭고하게 빛나며 관객에게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 파괴되는 순수의 가치
미자와 옥자가 함께하는 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영화 초반의 평화롭고 순수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옥자는 단순한 동물을 넘어 미자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과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옥자의 크고 순한 눈망울과 미자를 향한 애정 어린 행동들은 둘 사이의 깊은 유대감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며 인간과 자연, 그리고 동물과의 조화로운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란도 코퍼레이션이 옥자를 뉴욕으로 데려가면서 이러한 평화는 깨지고 자본의 논리에 의해 파괴되는 순수의 가치를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이 연기하는 냉혹한 CEO 루시 미란도와 그녀의 쌍둥이 동생 낸시 미란도의 모습은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거대 기업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동물 윤리와 기업의 탐욕, 불편한 진실의 폭로
영화는 옥자를 비롯한 슈퍼 돼지들이 식량 생산이라는 명목 아래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 잔혹하게 사육되고 도축되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며 동물 윤리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폴 다노(Paul Dano)가 연기하는 동물 보호 단체 ALF의 활동가 제이와 그의 동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대 기업의 힘 앞에 무력한 현실은 시각적으로 불편한 진실을 폭로한다. 제이크 질렌할(Jake Gyllenhaal)이 연기하는 닥터 조니 윌콕스의 광기 어린 행동과 슈퍼 돼지에 대한 왜곡된 연구는 과학 기술이 자본의 논리에 예속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미자의 용기와 헌신, 작은 존재의 위대한 저항
자신의 소중한 친구 옥자를 구하기 위해 홀로 뉴욕까지 여정을 떠나는 미자의 용기와 헌신은 영화의 주요 동력이다. 그녀의 순수한 마음과 옥자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은 거대한 기업의 냉혹한 시스템 앞에서 작은 돌멩이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힘보다 강렬한 울림을 전달한다. 미자의 결단력과 끈기는 옥자를 구하기 위한 ALF의 노력에 동력을 제공하고 결국 루시 미란도와의 극적인 대면을 이끌어낸다. 안서현 배우의 섬세하면서도 강단 있는 연기는 미자의 순수한 용기와 옥자를 향한 진심을 시각적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 가능성, 윤리적 소비에 대한 질문
영화의 결말은 완전한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미자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인해 옥자와 또 다른 슈퍼 돼지 한 마리가 구출되면서 작은 희망을 남긴다. 이는 인간의 탐욕적인 시스템 속에서도 개인의 윤리적인 선택과 행동이 미약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와 미자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우리가 소비하는 식량의 생산 과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윤리적인 소비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촉구한다. 인간과 동물이 진정으로 공존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지는 것이다.
블랙 유머와 사회 비판의 조화, 봉준호 감독의 능숙함
<옥자 (Okja)>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봉준호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와 부조리한 상황들을 능숙하게 배치하여 영화의 톤을 애절한 슬픔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조절한다.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과 제이크 질렌할(Jake Gyllenhaal)의 과장된 연기는 자본주의적인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희화화하고 곳곳에 숨겨진 유머 코드는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무거운 주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 하지만 이러한 유머 속에서도 영화가 던지는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는 결코 희석되지 않고 더욱 강렬하게 시각적으로 각인된다. 봉준호 감독의 능숙함은 무거운 주제와 유머를 절묘하게 조화시켜 관객에게 깊은 생각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