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종종 우리가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로랑 캉테(Laurent Cantet) 감독의 200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클래스>(Entre les murs, 영어 제목: The Class)는 가장 익숙한 공간 중 하나인 '교실'을 통해 현대 사회의 미시정치학을 해부한다. 대부분의 관객이 수년간 생활했던 공간인 교실을 하나의 정치적 아레나로 재해석함으로써 이 영화는 우리가 민주주의와 갈등, 권위와 저항에 대해 새롭게 사유하도록 유도한다.
교실: 국가의 축소판이자 민주주의의 실험실
많은 평론가들이 <클래스>를 교육 현실에 관한 영화로 해석했지만 이 작품은 사실 프랑스라는 국가의 축소판을 교실이라는 미시적 공간 속에 투영한 정치적 알레고리다. 파리 20구의 다문화 중학교 교실은 단순한 배움의 장소가 아닌 국가 정체성, 이민, 계급, 권위,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는 민주주의의 실험실로 기능한다.
프랑수아 베고도(François Bégaudeau)가 연기한 프랑수아 선생님은 단순한 교사가 아니라 이 작은 '공화국'의 지도자다. 그의 프랑스어 수업은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문화적 헤게모니를 전수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프랑수아는 끊임없이 권력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가 학생들에게 "너희들에게 네 생각을 강요하려는 게 아니야"라고 말할 때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위자가 겪는 딜레마를 목격한다.
이 대사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을 함축한다. 자유와 질서, 개인의 권리와 집단의 규칙 사이의 영원한 긴장 관계를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신체정치학과 공간의 상징성
<클래스>의 프랑스어 원제 'Entre les murs'는 '벽 사이에서'라는 의미로 물리적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영화는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몸짓, 위치, 움직임의 정치학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프랑수아가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거나, 책상에 기대거나, 칠판 앞에 서는 모든 순간은 권력 관계의 시각적 표현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소울레이만(Souleymane, 배우 프랑크 케이타/Franck Keïta)의 신체적 표현이다. 언어로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그는 몸짓과 공간 점유를 통해 저항한다. 그의 교실 이탈, 자리 이동, 책상 치기 등은 언어적 헤게모니에 대한 비언어적 대응이다. 소울레이만의 사진 프로젝트에서 그가 찍은 어머니의 손에 관한 이미지는 말보다 강력한 표현 수단이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프랑수아가 빈 교실에 홀로 남는 순간은 공간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명상적 질문을 던진다. 학생 없는 교실에서 교사의 권위는 무의미해진다. 이는 푸코의 '권력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명제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순간이다.
언어의 정치학: 표준어와 방언, 중심과 주변의 충돌
프랑스어 교사인 프랑수아의 교실에서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문화적 헤게모니의 전장이다. 표준 프랑스어와 이민자 자녀들의 다양한 언어적 배경 사이의 충돌은 국가 정체성과 문화적 다양성 간의 거시적 갈등을 반영한다.
에스메랄다(Esmeralda, 배우 에스메랄다 우에르테볼트/Esmeralda Ouertani)가 사용하는 구어체 표현을 교정하는 프랑수아의 모습은 언어를 통한 문화적 규범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영화는 이러한 언어적 규범화를 그저 일방적인 억압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이 이를 내면화하고 때로는 교사에게 되돌려 사용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쿠음바(Khoumba, 배우 라샤 게마르/Rachel Régulier)가 프랑수아에게 "당신이 항상 마지막 말을 해야 되나요?"라고 질문할 때, 그녀는 교사의 언어적 권위에 도전하면서도 그가 가르친 논리적 담론의 규칙을 사용한다. 이는 푸코가 말한 '저항은 권력이 작용하는 곳에서 항상 발생한다'는 원리를 교실 공간에서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주목할 만한 장면은 접속법(subjunctive) 문법을 가르치는 수업이다. 프랑스어의 복잡한 문법인 접속법은 가정과 비현실성을 표현하는 문법 체계로 현실과 가능성 사이의 간극을 담아낸다. 교실의 이민자 학생들에게 이 문법은 그들의 이중적 정체성—현실 속 프랑스와 그들이 꿈꾸는 프랑스 사이의 괴리—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의 정치학: 관찰과 참여 사이
로랑 캉테 감독의 독특한 촬영 방식은 영화의 정치적 차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 대의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한 영화는 '누구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바라볼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교사를 쫓는 카메라, 학생들을 포착하는 카메라, 그리고 교실 전체를 관찰하는 카메라는 다양한 주체성과 권력 관계의 역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이러한 촬영 방식은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가 말한 '감각적인 것의 분배'(distribution of the sensible)를 영화적으로 실현한다. 누가 보이고, 들리며, 중요하게 여겨지는가의 문제는 교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정치적 구조를 반영한다.
특히 학생들의 극단적인 클로즈업은 기존 교육 영화들이 집단으로만 다루던 학생들을 개별적 주체로 인정하는 정치적 행위다. 카메라는 웨이(Wei, 배우 웨이 황/Wei Huang), 나설리마(Nassim, 배우 나세임 라쿠아이/Nassim Amrabt), 칼(Carl, 배우 칼 나노르/Carl Nanor) 같은 '조용한' 학생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까지 포착함으로써 교실의 모든 구성원을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한다.
평가와 분류의 정치학
영화의 핵심적인 갈등 중 하나는 학기말 평가회의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이 장면은 국가 시스템이 시민을 분류하고 통제하는 방식에 대한 알레고리다. 특히 소울레이만의 사례를 다루는 장면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문제적 개인'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담고 있다.
아프리카계 교사인 카니(Kani)가 던지는 이 질문은 처벌적 정의와 회복적 정의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소울레이만을 퇴학시키는 결정은 단순한 교육적 조치가 아니라 국가가 '다루기 어려운' 구성원을 배제하는 정치적 행위를 상징한다.
영화는 이러한 평가 시스템의 모순을 드러낸다. 학생들의 '행동'과 '학업'을 분리해서 평가하겠다는 원칙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소울레이만의 사례에서 보듯 사회적 조건과 언어적 능력, 문화적 배경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분리하여 평가하는 시스템 자체가 구조적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프랑스 공화주의와 다문화주의의 긴장
<클래스>는 표면적으로는 교육 현장을 다루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는 프랑스 공화주의 모델과 다문화주의적 현실 사이의 근본적인 긴장을 탐구한다. 프랑스의 '라이시테'(laïcité, 세속주의) 원칙과 이민자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 사이의 갈등은 영화 전반에 걸쳐 미묘하게 드러난다.
특히 소울레이만의 어머니가 통역사를 통해 교사와 대화하는 장면은 단순한 언어적 장벽을 넘어서는 문화적, 정치적 단절을 보여준다. 국가 시스템(학교)과 이민자 가정 사이의 소통 불능은 통합과 배제의 정치학을 가시화한다.
또한 두 여학생이 자신들의 독서 경험을 나누는 장면에서 한 학생이 미국 소설 <The Republic of Shame>을 읽었다고 언급할 때 이는 프랑스 '공화국'(République)의 이상과 현실적인 '수치'(Shame) 사이의 간극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결론: 미완의 민주주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학생 안젤리카(Angélica)가 프랑수아에게 다가와 "선생님, 저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어요"라고 고백하는 순간은 영화의 정치적 메시지를 집약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교육적 실패를 의미하지만 보다 깊은 차원에서는 민주주의 프로젝트의 미완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곧이어 그녀가 '햄릿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배웠다고 말하는 모순된 발언은 희망의 여지를 남긴다. 단일한 규범과 가치로 완전히 통합된 교육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의 본질임을 암시한다.
<클래스>는 교실이라는 미시적 공간을 통해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권위와 자유, 통합과 다양성, 평등과 차이, 말하기와 들리기의 정치학을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에 응축시킴으로써 로랑 캉테 감독은 현대 민주주의의 딜레마를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포착해낸다.
이처럼 <클래스>는 단순한 교육 현장의 기록이 아니라 미완의 민주주의가 매일매일 실험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되는 정치적 과정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교실의 벽 사이에서 펼쳐지는 이 미시정치학은 우리 사회 전체의 거시정치학을 비추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