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더 데스 오브 스탈린': 권력의 공백, 광기의 향연, 웃음 뒤의 냉소

by reward100 2025. 5. 10.

 

Film, The Death of Stalin, 2017

서론: 독재자의 죽음, 그 후 벌어지는 코미디 같은 비극

아만도 이아누치 (Armando Iannucci) 감독의 '더 데스 오브 스탈린 (The Death of Stalin, 2017)'은 1953년 소비에트 연방의 절대 권력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그의 후계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공산당 최고 간부들의 우스꽝스럽고도 살벌한 권력 암투를 그린 신랄한 정치 풍자 블랙 코미디이다. 이 영화는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들의 행동과 대사를 극도로 과장하고 희화화함으로써 전체주의 체제의 부조리함과 권력의 속성, 그리고 공포 정치 아래에서 인간성이 어떻게 마비되고 왜곡되는지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스탈린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슬랩스틱 코미디와 통렬한 풍자가 뒤섞인 소동극으로 재구성한 이아누치 감독의 대담한 연출은 관객에게 끊임없는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그 웃음 뒤에 숨겨진 폭력과 공포의 그림자를 상기시키며 불편한 성찰을 요구한다. '더 데스 오브 스탈린'은 단순한 역사 희화화를 넘어 권력의 본질과 그 공백이 초래하는 혼란, 그리고 이념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겨진 인간의 탐욕과 비겁함을 통렬하게 폭로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지적인 정치 풍자극 중 하나이다.

스탈린의 그림자: 공포 정치와 개인숭배가 남긴 유산

영화는 스탈린이 살아있을 당시 소비에트 사회를 지배했던 극도의 공포와 개인숭배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라디오 방송국 직원들은 스탈린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연주 실황 음반을 원한다는 전화 한 통에 사색이 되어 이미 끝난 연주를 관객들까지 동원해 억지로 재녹음하는 소동을 벌인다. 지휘자는 공포에 질려 실신하고 피아니스트 마리야 유리나(올가 쿠릴렌코, Olga Kurylenko 분)는 스탈린에 대한 증오를 담은 쪽지를 음반에 몰래 넣어 보낸다. 이 에피소드는 스탈린이라는 이름이 가진 절대적인 권위와 그 앞에서 벌벌 떠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사회가 얼마나 비이성적인 공포에 휩싸여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탈린의 변덕스러운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목숨이 좌우되고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며 생존을 위해 아첨과 복종을 강요당하는 현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부조리극이다.

스탈린의 갑작스러운 죽음(소변에 미끄러져 뇌출혈로 쓰러진 후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과정 역시 블랙코미디 그 자체이다)은 이러한 공포 정치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공포에 길들여진 자들이 만들어내는 더 큰 혼란의 시작을 알린다. 스탈린이라는 절대적인 구심점이 사라지자 그의 측근들은 누가 다음 권력을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지만 동시에 스탈린의 망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여전히 스탈린의 눈치를 보고 그의 뜻을 왜곡하여 해석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한다. 이는 오랜 독재 체제가 개인의 자율적인 판단 능력을 마비시키고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두려움만을 남기는 폐해를 보여준다.

권력 공백기의 암투: 베리야, 흐루쇼프, 그리고 꼭두각시들

스탈린이 쓰러지자마자 그의 최측근이었던 중앙위원회 간부들 – 비밀경찰 총수 라브렌티 베리야 (사이먼 러셀 빌, Simon Russell Beale 분), 부수상 니키타 흐루쇼프 (스티브 부세미, Steve Buscemi 분), 명목상의 후계자 게오르기 말렌코프 (제프리 탬버, Jeffrey Tambor 분), 외무상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마이클 폴린, Michael Palin 분) 등 – 은 즉시 권력 투쟁에 돌입한다. 이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우스꽝스럽게 그려지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를 제거하려는 살벌한 음모와 배신이 도사리고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인물은 베리야이다. 그는 스탈린의 비밀 파일을 장악하고 숙청 명단을 조작하며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잔혹하고 교활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어설픈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그의 악행은 종종 희극적인 상황과 맞물려 기괴한 웃음을 유발한다.

이에 맞서는 흐루쇼프는 상대적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듯하지만 그 역시 권력욕에 사로잡혀 베리야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그는 다른 간부들을 포섭하고 군부의 실력자인 주코프 원수 (제이슨 아이삭스, Jason Isaacs 분)를 끌어들여 베리야에 대한 반격을 준비한다. 말렌코프는 스탈린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내세워지지만 실제로는 우유부단하고 무능하여 베리야와 흐루쇼프 사이에서 꼭두각시처럼 휘둘린다. 몰로토프는 스탈린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현실 감각 부족으로 인해 끊임없이 조롱거리가 된다. 이처럼 각 인물들은 역사적 실존 인물들의 특징을 과장되게 차용하면서도 동시에 권력 앞에서 한없이 비굴해지고 어리석어지는 인간 군상의 보편적인 모습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권력 다툼은 국가의 미래나 이념적 신념과는 거리가 멀고 오직 개인적인 생존과 탐욕을 위한 이전투구일 뿐이다.

풍자와 블랙 유머: 웃음으로 폭로하는 전체주의의 민낯

아만도 이아누치 감독은 '더 데스 오브 스탈린'에서 특유의 날카로운 풍자와 블랙 유머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전체주의 체제의 부조리와 폭력성을 폭로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대부분 영어로 대화하지만 때때로 러시아 억양을 섞어 쓰거나 러시아적인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현실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희극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스탈린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온갖 소동들 – 스탈린의 시신을 옮기다 떨어뜨리거나, 장례식 순서를 놓고 다투는 모습 등 – 은 엄숙해야 할 장례식마저 한 편의 코미디로 전락시킨다. 또한, 간부들이 회의 중에 서로 눈치를 보며 스탈린의 농담에 억지로 웃거나, 그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은 권력자 앞에서의 비굴함과 공포 심리를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폭력과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결코 감상적이거나 교훈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폭력과 죽음마저 희극적인 상황의 일부로 만들거나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전체주의 체제 하에서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경시되고 폭력이 일상화될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고발한다. 예를 들어, 베리야가 숙청 대상자 명단을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하거나 주코프 원수가 베리야의 처형을 마치 사냥감 처리하듯 지시하는 모습 등은 웃음과 동시에 섬뜩함을 자아낸다. 이러한 블랙 유머는 관객에게 잠시 동안의 유희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그 웃음 뒤에 숨겨진 현실의 잔혹함과 부조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불편한 각성의 계기가 된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 풍자를 위한 재창조

'더 데스 오브 스탈린'은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기반으로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허구적인 상상력과 극적인 과장이 가미되어 있다. 감독은 역사적 고증에 얽매이기보다는 풍자라는 목적을 위해 역사를 자유롭게 재해석하고 재창조한다. 이는 일부 역사학자나 러시아 관객들에게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영화의 본질은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정치 풍자극이라는 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은 실제 그들이 했던 말이나 행동과 다를 수 있지만 그들이 처했던 상황의 본질적인 부조리와 권력의 속성은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포착된다.

예를 들어, 스탈린의 아들 바실리(루퍼트 프렌드, Rupert Friend 분)는 실제 역사보다 훨씬 더 어리석고 철없는 인물로 그려지며 그의 기행은 영화의 코믹한 분위기를 더한다. 주코프 원수 역시 실제보다 더 과장되고 허풍스러운 캐릭터로 묘사되지만 그의 등장은 경직된 공산당 간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시원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이처럼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존중하면서도 풍자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인물과 사건을 변형하고 재배치하는 전략을 취한다.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사실의 정확성보다는 영화 전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 즉 권력의 부패와 전체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이다.

결론: 웃음 뒤의 냉소, 권력이라는 영원한 코미디

아만도 이아누치의 '더 데스 오브 스탈린'은 단순한 역사 코미디를 넘어 권력의 본질과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통렬하고도 지적인 풍자극이다. 영화는 스탈린이라는 절대 권력자의 죽음 이후 벌어지는 혼란과 암투를 통해 전체주의 체제가 어떻게 개인의 이성과 도덕성을 마비시키고 사회 전체를 비극적인 코미디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뛰어난 각본과 배우들의 명연기, 그리고 거침없는 풍자와 블랙 유머는 관객에게 끊임없는 웃음을 선사하지만, 그 웃음의 끝에는 권력의 허망함과 역사의 비극에 대한 깊은 냉소와 성찰이 남는다. '더 데스 오브 스탈린'은 과거의 특정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권력욕, 기회주의, 대중 선동, 진실 왜곡 등의 문제는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를 던진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배우고 있는가? 그리고 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부조리한 코미디는 과연 과거의 일일 뿐인가? 웃음과 불편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이 영화는 관객에게 정치와 권력의 민낯을 직시하게 만드는 강력하고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체제를 떠나 권력이 소수에 집중되면 그 부작용으로 다수의 피해자가 양산되는 것을 목격하는 현재,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이 진정한 국가의 주인인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더욱 새롭게 새기는 계기가 되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