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더 스퀘어': 위선적인 광장, 현대 예술과 인간 본성의 민낯

by reward100 2025. 5. 11.

 

Film, The Square, 2017

서론: 예술이라는 이름의 광장, 그 안의 불편한 진실들

루벤 외스틀룬드 (Ruben Östlund) 감독의 '더 스퀘어 (The Square, 2017)'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작품으로 현대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안 (클라에스 방, Claes Bang 분)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와 예술계의 위선, 도덕적 딜레마, 그리고 인간 본성의 이기적인 단면들을 날카롭고도 불편한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파헤친다. 영화는 '더 스퀘어'라는 새로운 전시 – "광장은 신뢰와 배려의 성역이다. 그 안에서는 우리 모두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 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크리스티안이 겪게 되는 일련의 황당하고도 곤혹스러운 사건들을 통해 그가 옹호하는 이상적인 가치와 실제 그의 행동, 그리고 그가 속한 세계의 위선적인 민낯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기이한 인물들의 등장은 관객에게 끊임없이 웃음과 동시에 불편함을 안겨주며 현대인의 윤리 의식, 정치적 올바름의 허점, 미디어의 선정성, 그리고 계급 문제 등 다층적인 주제에 대한 자기 성찰을 요구하는 지극히 도발적이고도 지적인 사회 풍자극이다.

크리스티안: 세련된 위선, 흔들리는 도덕적 나침반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티안은 스웨덴의 명망 높은 현대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로 지적이고 세련된 외모와 언변을 갖춘 상류층 엘리트이다. 그는 '더 스퀘어'라는 전시를 통해 사회적 연대와 신뢰라는 숭고한 가치를 설파하지만 정작 자신의 일상에서는 이러한 가치와는 거리가 먼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행동들을 반복한다. 길에서 소매치기를 당하자 그는 범인을 잡기 위해 다소 과격하고 무모한 방법을 동원하고 이로 인해 무고한 소년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제대로 된 사과나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또한, 미국인 기자 앤 (엘리자베스 모스, Elisabeth Moss 분)과의 하룻밤 이후에는 사용한 콘돔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옹졸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크리스티안이 겉으로는 진보적이고 교양 있는 예술계 인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안위와 평판을 우선시하며 도덕적 책임 앞에서 망설이고 변명하는 평범하거나 혹은 그 이하의 인간임을 보여준다.

그의 위선은 '더 스퀘어' 전시의 홍보 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젊고 야심 찬 홍보 대행사는 전시의 메시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가난한 소녀가 폭발하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고 이것이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자 크리스티안은 책임을 회피하며 발뺌하려 한다. 그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지만 정작 예술이 상업적인 논리와 미디어의 선정성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고 소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크리스티안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진보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기득권의 논리에 안주하며 위선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날카로운 풍자이다. 그의 도덕적 나침반은 끊임없이 흔들리며 그는 매 순간 자신의 이익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한다.

'더 스퀘어' 전시: 이상과 현실의 괴리,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질문

영화의 제목이자 크리스티안이 준비하는 새로운 전시인 '더 스퀘어'는 미술관 앞 광장에 설치된 가로세로 4미터 크기의 사각형 공간으로 그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신뢰하고 도와야 한다는 규칙이 적용되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상징이다. 이 전시는 현대 사회의 만연한 불신과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이자 상호 존중과 연대의 가치를 회복하려는 예술적 시도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이상적인 메시지와 실제 현실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냉소적으로 보여준다. '더 스퀘어'라는 공간은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문제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조롱하는 아이러니한 장치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크리스티안이 소매치기범을 잡기 위해 익명으로 협박 편지를 보내는 행위는 '더 스퀘어'가 추구하는 신뢰와 배려의 정신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한, 미술관 만찬 행사에서 벌어지는 행위 예술가 올렉(테리 노터리, Terry Notary 분)의 퍼포먼스는 예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관객들의 무관심, 그리고 위선적인 방관자적 태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충격적인 장면이다. 유인원처럼 행동하는 올렉이 만찬장의 손님들을 위협하고 모욕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상황을 외면하려 한다. 이는 '더 스퀘어'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공동체 의식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는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예술이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그것이 실제적인 변화로 이어지기는 얼마나 어려운지를 냉소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더 스퀘어'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그 한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제적인 텍스트가 된다.

미디어와 대중: 자극적인 소비, 무관심과 책임 회피

'더 스퀘어'는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가 어떻게 진실을 왜곡하고 대중의 인식을 조작하는지, 그리고 대중은 그러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어떻게 무관심과 책임 회피에 길들여지는지를 비판적으로 탐구한다. '더 스퀘어' 전시의 홍보 영상은 전시의 본질적인 메시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미디어의 선정적인 속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지만 동시에 격렬한 사회적 비난을 야기하고 미술관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다. 이는 오늘날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 '어그로'를 끌기 위한 자극적인 콘텐츠가 어떻게 진지한 담론을 대체하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지를 정확하게 포착한다.

또한, 영화는 이러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대중이 어떻게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하고 사회 문제에 대해 무관심해지는지를 보여준다. 미술관 만찬 행사에서 벌어지는 올렉의 폭력적인 퍼포먼스에 대해 대부분의 관객은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하며 심지어 일부는 그것을 촬영하며 즐기는 듯한 모습까지 보인다. 이는 타인의 고통이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안전한 거리에서 관음적으로 소비하려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한다. 크리스티안 역시 자신이 소매치기범으로 오해했던 소년의 절박한 호소를 무시하고 외면하며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모습들은 '더 스퀘어'가 제시하는 '신뢰와 배려의 성역'이라는 이상이 얼마나 허구적인 구호에 불과한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며 현대 사회의 만연한 무관심과 책임 회피의 문화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불편한 유머와 예측 불가능한 전개: 외스틀룬드식 풍자의 미학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더 스퀘어'에서 특유의 불편하고 예측 불가능한 유머 감각을 통해 관객을 끊임없이 당황시키고 도발한다. 영화 속 상황들은 종종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울 것 같은 극단적이고 기이한 방식으로 전개되지만 그 이면에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 심리의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크리스티안이 기자 앤과 콘돔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나, 미술관 인터뷰 도중 갑자기 투렛 증후군 환자가 욕설을 내뱉는 장면, 그리고 앞서 언급한 올렉의 퍼포먼스 등은 관객에게 웃음과 동시에 극도의 불편함과 불안감을 안겨준다. 이러한 '불편한 유머'는 관객이 안전한 거리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방해하고 영화 속 인물들과 상황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가진다.

외스틀룬드는 명확한 인과관계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문제적인 상황들을 나열하고 그 속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의 카메라는 종종 인물들과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듯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위선과 어리석음을 집요하게 포착하여 폭로한다. 이러한 연출 스타일은 관객에게 쉬운 감정적 동화나 카타르시스를 허용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논쟁을 유발하며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도록 이끈다. 이것이 바로 외스틀룬드식 풍자가 가진 독특한 힘이자 매력이다.

결론: 광장 안의 우리, 위선과 책임에 대한 성찰

'더 스퀘어'는 현대 예술과 사회,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롭고도 지적인 풍자극이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신뢰와 배려의 성역'이라는 이상적인 구호와 그 이면의 위선적인 현실 사이의 간극을 통해 현대인의 도덕적 딜레마와 책임 회피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영화는 세련된 엘리트주의, 예술계의 허영, 미디어의 선정성, 정치적 올바름의 모순, 그리고 계급 문제 등 다층적인 주제들을 예측 불가능하고 불편한 유머 감각으로 엮어내며 관객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크리스티안의 위태로운 여정은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우리는 과연 우리가 내세우는 이상적인 가치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타인의 고통에 얼마나 공감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는가? '더 스퀘어'는 이러한 불편한 질문들을 통해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 안에 존재하는 '광장'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드는 강력하고도 문제적인 작품이다. 영화가 제시하는 광장은 텅 비어 있거나 혹은 위선으로 가득 차 있을지 모르지만 그 광장을 진정한 신뢰와 배려의 공간으로 채워나갈 책임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