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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 윌 비 블러드': 피와 석유, 한 남자의 탐욕이 빚어낸 비극

by reward100 2025. 5. 19.

There Will Be Blood, 2007

서론: 황무지에서 솟아오른 검은 욕망, 한 영혼의 장엄한 몰락 서사

폴 토머스 앤더슨 (Paul Thomas Anderson)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 2007)'는 20세기 초 석유 개발이라는 미국의 성장 신화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그로 인한 영혼의 파괴를 그린 장엄하고도 냉혹한 서사극이다. 업튼 싱클레어(Upton Sinclair)의 소설 '석유!(Oil!)'를 느슨하게 각색한 이 영화는 고독한 광부에서 냉혈한 석유 재벌로 변모해가는 다니엘 플레인뷰 (다니엘 데이 루이스, Daniel Day-Lewis 분)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본질, 종교의 위선, 그리고 가족과 인간관계의 파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석유라는 검은 황금이 한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잠식하고 황폐화시키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국 자본주의의 초기 풍경과 인간 본성의 어두운 심연을 압도적인 영상미와 강렬한 연기로 그려낸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영화적 성취 중 하나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하지만 동시에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과 탐욕의 비극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강력한 문제작이다.

다니엘 플레인뷰: 자수성가한 거인이자 모든 것을 삼키는 공허, 그 냉혹한 초상

영화의 중심에는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미국 자본주의의 신화와 악몽을 동시에 체현하는 듯한 압도적인 캐릭터가 존재한다. 그는 영화 초반, 대사 한마디 없이 척박한 광산에서 홀로 은을 캐는 고독한 광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장면은 그의 강인한 생존력과 목표를 향한 집요한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삶을 지배하게 될 고립과 불신의 씨앗을 암시한다. 우연히 석유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아들 H.W.(딜런 프레지어, Dillon Freasier / 러셀 하버드, Russell Harvard 분)를 앞세워 순박한 시골 마을 사람들을 회유하고 땅을 사들이며 석유 시추 사업을 확장해나간다. 그는 뛰어난 사업 수완과 카리스마, 그리고 때로는 잔인하리만큼 냉철한 판단력으로 부를 축적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감정과 관계는 철저히 배제하거나 도구로 이용할 뿐이다.

그의 유명한 대사, "나는 내 안에 경쟁심이 있다. 나는 다른 누구도 성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I have a competition in me. I want no one else to succeed.)"는 그의 인간 혐오와 극단적인 이기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가족조차 사업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듯하며 아들 H.W.가 사고로 청력을 잃자 그를 냉정하게 내치고 가짜 동생 헨리(케빈 J. 오코너, Kevin J. O'Connor 분)의 정체가 드러나자 가차 없이 살해한다. 그의 인간관계는 철저히 이해타산에 기반하며 진정한 신뢰나 애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석유를 발견하고 부를 쌓아갈수록 그의 내면은 더욱 공허해지고 편집증적인 불신은 깊어만 간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러한 다니엘 플레인뷰의 복합적이고도 괴물 같은 캐릭터 – 강인한 개척자이자 동시에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 성공한 사업가이자 동시에 고독한 패배자 – 를 신들린 연기로 완벽하게 구현해내며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렬한 캐릭터 중 하나를 창조해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바로 '피가 있을 것이다(There Will Be Blood)'라는 제목의 의미를 온몸으로 증명한다.

일라이 선데이: 거짓 선지자, 자본주의와 결탁한 종교의 타락과 위선

다니엘 플레인뷰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은 바로 그가 석유를 시추하는 마을의 젊은 목사 일라이 선데이 (폴 다노, Paul Dano 분)이다. 일라이는 자신이 '제3계시교회(Church of the Third Revelation)'의 선지자이며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순진한 마을 사람들을 현혹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물질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위선적인 인물이다. 그는 다니엘에게 석유 시추권을 넘기는 대가로 교회 건립 자금을 요구하고 석유 시추 현장에서의 축복 기도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한다. 다니엘과 일라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서로를 이용하려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으며 영화는 이 두 인물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자본주의와 종교라는 두 거대한 힘이 어떻게 서로를 필요로 하고 착취하며 공생하는지를 보여준다.

다니엘이 석유 시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자 마지못해 일라이의 교회에서 세례를 받는 장면이나 반대로 일라이가 사업 자금을 구하기 위해 다니엘의 볼링장에서 굴욕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믿음을 부정당하는 장면 등은 두 사람 사이의 역학 관계와 각자가 가진 힘의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다니엘은 일라이의 종교적 권위를 경멸하면서도 사업의 성공을 위해 그것을 이용하고 일라이는 다니엘의 물질적 힘을 탐하면서도 그의 오만함에 분노한다. 그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결코 진정으로 화합할 수 없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들이다. 폴 다노는 이러한 일라이 선데이의 광신적이면서도 교활하고, 때로는 한없이 나약한 모습을 섬뜩하리만큼 설득력 있게 연기하며,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의 팽팽한 연기 대결을 통해 영화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일라이의 타락은 종교가 세속적인 욕망과 결합했을 때 얼마나 위선적이고 파괴적인 형태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이다.

석유라는 검은 피: 미국의 꿈 이면의 폭력성과 인간성 상실의 알레고리

영화에서 석유는 단순한 에너지 자원이나 부의 원천을 넘어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그로 인한 파괴, 그리고 미국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본성을 상징하는 강력한 알레고리이다.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석유는 마치 대지의 피처럼 보이며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인간들의 투쟁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연상시킨다. 다니엘 플레인뷰는 석유를 통해 막대한 부를 얻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파괴하며 결국에는 자기 자신마저 삼켜버리는 공허한 존재로 전락한다. 석유 시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잦은 사고와 인명 피해는 자본 축적 과정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희생과 폭력성을 암시하며 황량했던 땅이 석유 시추 시설로 뒤덮이는 모습은 자연 파괴와 환경 오염이라는 현대 산업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예고하는 듯하다.

영화는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신화 이면에 숨겨진 냉혹한 현실을 직시한다. 개인의 노력과 야망을 통해 성공을 쟁취한다는 이야기는 종종 타인에 대한 착취와 비정한 경쟁, 그리고 인간적인 가치의 상실을 동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니엘 플레인뷰의 성공은 결코 아름답거나 영웅적이지 않다. 그것은 피와 탐욕으로 얼룩진 고독하고 공허한 승리일 뿐이다. 그는 "나는 다른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하며 오직 석유와 돈만을 향한 집착을 드러낸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물질만능주의와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의 병리 현상을 반영하는 동시에 진정한 행복과 성공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석유는 그에게 모든 것을 가져다준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들 – 가족, 우정, 사랑, 그리고 인간성 – 을 빼앗아간 저주의 대상이기도 했다.

PTA의 영화 언어: 압도적인 영상미, 불협화음의 음악, 그리고 서사의 무게감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은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자신만의 독특하고 강렬한 영화 언어를 통해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촬영감독 로버트 엘스윗(Robert Elswit)과 함께 만들어낸 영상은 광활하고 황량한 서부의 풍경과 그 안에서 고독하게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장엄하고도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석유가 처음으로 분출하는 장면이나 유정탑에 불이 붙는 장면 등은 압도적인 스펙터클과 함께 석유의 파괴적인 힘과 매혹을 동시에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활용, 그리고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내면 심리를 포착하는 방식은 영화에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남긴다.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가 작곡한 영화 음악 역시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의 음악은 전통적인 영화 음악의 관습을 따르기보다는 불협화음과 예측 불가능한 리듬, 그리고 신경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사운드를 통해 다니엘 플레인뷰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와 영화 전체에 흐르는 긴장감과 불편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음악은 때로는 인물의 감정과 불일치하거나 대조를 이루면서 아이러니한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영화의 느리고 묵직한 편집 리듬과 절제된 대사 역시 서사의 무게감을 더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미지와 분위기 속에 담긴 의미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PTA는 이러한 모든 영화적 요소들을 정교하게 조율하여 한 편의 거대한 비극적 오페라와 같은 압도적인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가족, 배신, 그리고 연결 불가능성: 인간관계의 처참한 붕괴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다니엘 플레인뷰의 삶을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적인 취약성과 연결 불가능성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그에게 가족은 진정한 사랑과 유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사업을 위한 도구나 자신의 약점을 가리기 위한 위장에 가깝다. 그는 아들 H.W.를 '바구니에 담긴 사생아(a bastard in a basket)'라고 부르며 그가 청력을 잃자 사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기숙학교로 보내버린다. 자신을 찾아온 가짜 동생 헨리에게 잠시나마 인간적인 정을 느끼는 듯 보이지만 그의 정체가 탄로 나자 가차 없이 살해하고 만다.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는 누구와도 진정한 신뢰 관계를 맺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한다. 그의 극단적인 인간 혐오는 결국 그를 완전한 고립과 광기로 몰아넣는다.

영화의 마지막,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다니엘은 거대한 저택에서 홀로 술에 취해 볼링을 치며 시간을 보낸다. 성장한 H.W.가 찾아와 그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겠다고 선언하자 그는 아들에게 끔찍한 폭언을 퍼붓고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연결고리마저 스스로 파괴해버린다. 그리고 그의 오랜 라이벌이었던 일라이가 찾아와 마지막 발악을 하자 그는 볼링 핀으로 일라이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나는 끝났다(I'm finished)"라고 읊조린다. 이 장면은 그의 완전한 파멸과 영혼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석유를 통해 모든 것을 얻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잃었다. 그의 삶은 인간적인 연결과 사랑 없이는 그 어떤 부와 성공도 결국 공허할 뿐이라는 비극적인 진실을 증명한다.

결론: 탐욕의 연대기, 미국 자본주의의 어두운 심연과 한 인간의 자화상

폴 토머스 앤더슨(PTA)의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단순히 한 석유 재벌의 일대기를 넘어 미국 자본주의의 태동기에 숨겨진 폭력성과 탐욕, 그리고 그 안에서 괴물로 변해가는 한 인간의 초상을 그린 압도적이고도 문제적인 걸작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전설적인 연기는 영화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강렬한 생명력을 불어넣었으며 PTA 감독의 야심 찬 연출은 서사적 깊이와 미학적 성취를 동시에 달성했다. 영화는 석유라는 검은 황금이 상징하는 물질적 풍요와 그 이면의 정신적 황폐함, 그리고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둡고 파괴적인 욕망을 냉정하고도 집요하게 파헤친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관객에게 불편함과 동시에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자본주의와 인간 본성, 그리고 성공과 행복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는 한번 보고 쉽게 잊을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비극 중 하나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다니엘 플레인뷰의 고독한 외침, "나는 끝났다"는 어쩌면 물질적 성공만을 향해 질주하는 현대 사회 전체를 향한 경고이자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대한 처절한 자기 고백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