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스 (Mass)
감독: 프란 크랜즈 | 주연: 리드 버니, 앤 도드, 제이슨 아이삭스, 마샤 게이 하든 | 2021
I. 작은 방, 무거운 침묵: 고통스러운 만남의 서곡
프란 크랜즈 감독의 데뷔작 '매스'는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라는 비극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사건 자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깊은 상처와 고통, 그리고 치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강렬한 드라마이다. 영화는 한 교회의 작은 방, 단 하나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쌍의 부부의 대화만으로 거의 모든 이야기가 전개되는 미니멀한 구성을 취한다. 제이(제이슨 아이삭스 분)와 게일(마샤 게이 하든 분)은 사건의 피해자 소년의 부모이며 리처드(리드 버니 분)와 린다(앤 도드 분)는 가해자 소년의 부모다. 수년이 흐른 뒤 어렵게 성사된 이 만남은 어색한 침묵과 조심스러운 탐색전으로 시작되지만 이내 억눌렸던 감정들이 터져 나오며 격렬한 파장을 일으킨다. 영화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 상실의 아픔, 분노, 죄책감, 그리고 이해와 용서라는 복잡하고도 어려운 감정의 소용돌이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II. "왜?": 끝나지 않는 질문과 드러나는 상처
대화가 진행될수록 네 사람은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과 상처들을 쏟아낸다. 피해자의 부모인 제이와 게일은 아들을 잃은 슬픔과 함께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가해자 소년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답을 갈망한다. 그들은 가해자 부모에게 직간접적으로 책임을 묻고 아들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작은 단서라도 얻으려 애쓴다. 반면, 가해자의 부모인 리처드와 린다는 아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깊은 죄책감과 사회적 비난 속에서 고통받아왔음을 토로한다. 그들 역시 아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사건 이전 아들의 이상 징후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영화는 어느 한쪽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네 사람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의 아픔과 씨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과 침묵 사이: 감정의 격랑
영화에서 대사는 극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동시에 침묵 또한 강력한 힘을 지닌다. 인물들 사이의 어색한 침묵,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말들, 그리고 격앙된 감정 뒤에 찾아오는 공허한 정적은 그들의 내면의 고통과 복잡한 심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프란 크랜즈 감독은 과도한 음악이나 시각적 장치를 배제하고 오직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그리고 침묵의 힘에 의존하여 극도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관객은 마치 이 고통스러운 대화의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들의 감정에 깊이 동화된다.
대화는 때로는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비난과 원망으로 치닫기도 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공감과 이해의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들은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며 사건의 조각들을 맞춰나가려 하지만 명확한 해답이나 완전한 치유는 요원해 보인다. "우리가 원하는 건 단지 이해하는 거예요." 라는 게일의 절규는 아들을 잃은 부모의 처절한 심정을 대변하며 동시에 인간이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III. 이해와 용서, 그 멀고 험난한 길
영화는 용서라는 주제를 단순하게 다루지 않는다. 네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고통스러운 대화를 이어가지만 그 과정에서 아주 조금씩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가해자의 부모는 피해자 부모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사죄의 뜻을 전하고 피해자 부모 역시 가해자 부모가 겪었을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용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며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는다. 영화는 완전한 화해나 해피엔딩을 제시하기보다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아주 작은 위로와 이해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네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 '매스'의 가장 큰 힘은 네 주연 배우의 경이로운 연기 앙상블에서 나온다. 리드 버니, 앤 도드, 제이슨 아이삭스, 마샤 게이 하든은 각각의 캐릭터가 느끼는 복잡하고 깊은 감정들을 절제되면서도 폭발적인 에너지로 표현해내며 스크린을 장악한다. 이들의 섬세한 표정 연기와 목소리 톤의 변화는 관객이 각 인물의 고통에 깊이 몰입하도록 만들며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강력하게 전달한다.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배우들의 열연은 이 영화를 단순한 사회 드라마를 넘어선 예술 작품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영화의 마지막, 네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약간의 감정적 해소를 경험하거나 혹은 여전히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방을 나서는 모습은 현실적인 여운을 남긴다. 이 만남이 그들에게 완전한 치유를 가져다주지는 못했을지라도 서로의 고통을 마주하고 공유하려 했던 그 시간 자체가 작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매스'는 우리에게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긴 시간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연결과 이해를 향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