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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물과 흙 사이의 기억 연금술

by reward100 2025. 4. 9.

 

Film, Minari, 2020

 

정지된 시간 속에서 흐르는 물처럼 이 영화는 우리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 자리한 '고향'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한다. 리 아이작 정(Lee Isaac Chung)의 '미나리'는 단순한 이민자 서사가 아니다. 이 작품은 토양학적 내러티브(pedological narrative)로 읽어야 한다. 땅과 뿌리, 그리고 물이라는 원소들이 인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대한 섬세한 탐구이다.

흙을 파헤치는 제이콥(스티븐 연/Steven Yeun)의 손, 세대를 넘어 공유되는 민중지식으로서의 미나리 재배, 그리고 불안정한 이동식 주택은 모두 '뿌리내림'이라는 포착하기 어려운 개념의 물리적 구현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정한 혁신은 향수(nostalgia)를 시간적 개념이 아닌 공간적 개념으로 재해석한다는 점에 있다. 고향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 만들어가는 토양의 질감, 바람의 습도, 그리고 가족 간 말없는 이해의 순간들로 구성된다.

물과 불: 대립되는 원소들의 서사 구조

미나리는 물가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이 사실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타포로 작동한다. 모니카(한예리 /Yeri Han)의 눈물은 영화 곳곳에서 미나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물이 된다. 그러나 눈물은 슬픔만이 아니라 정화의 의식이기도 하다. 그녀의 눈물이 흐를 때마다 감정적 정체가 해소되고 새로운 이해의 순간이 찾아온다.

반면 제이콥의 농장에는 끊임없이 물이 부족하다. 우물을 파는 행위는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미국 땅에서 자신의 존재론적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상징한다. 물이 부족한 땅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그의 집착은 단순한 경제적 도전이 아니라 그의 정체성이 상징계로 진입하는 과정의 은유다.

이에 대립하는 원소로서의 '불'은 영화 후반부 농장 화재 장면에서 극적으로 표현된다. 불은 파괴의 원소지만 동시에 정화와 재생의 상징이기도 하다. 연기 속에서 도망치는 가족의 모습은 미국 땅에서의 그들의 불안정한 정체성을 반영하지만 화재 이후에도 미나리는 살아남는다. 미나리의 생존력은 이들 가족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상징한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첫해에는 미나리가 잠을 자. 둘째 해에는 일어나. 셋째 해에는 진짜 잘 자란다고."

순자 할머니(윤여정/Youn Yuh-jung)의 이 대사는 단순한 농업 지식이 아니다. 이는 이민자 경험의 시간성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다. 첫 해의 '잠'은 문화적 충격과 적응의 시기, 둘째 해의 '일어남'은 자아 인식의 회복, 셋째 해의 '성장'은 새로운 정체성의 확립을 의미한다. 영화는 이 세 단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정체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번역불가능성의 미학: 언어와 정체성

이 영화의 또 다른 혁신적 측면은 다국어 사용에 있다. 영어와 한국어가 공존하는 언어적 풍경은 단순한 현실적 묘사를 넘어선다. 이는 '번역불가능성(untranslatability)'이라는 철학적 개념의 영화적 구현이다. 데이빗(앨런 김/Alan S. Kim)과 할머니 사이의 언어적 간극은 단순한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이 세대를 거치며 겪는 변형과 재구성의 과정을 보여준다.

"할머니, 왜 할머니는 영어를 못해요?"

이 질문은 겉보기엔 순진해 보이지만 사실은 정체성의 핵심을 찌르는 철학적 질문이다. '왜 나의 언어가 아닌 너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가'라는 권력관계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할머니가 '마운틴 워터(Mountain water)'를 마운틴 '워오터'로 발음하는 장면은 단순한 코믹 요소가 아니다. 이는 언어 속에 내재된 문화적 권력 구조와 정체성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낸다.

더 나아가 영화는 언어를 넘어선 소통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할머니와 데이빗이 산책을 통해 형성하는 유대감,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가족의 모습, 그리고 미나리를 통해 전승되는 문화적 지혜는 모두 언어 없이도 가능한 소통의 형태들이다. 이는 '번역불가능성'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인간적 연결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몸의 기억: 신체성과 정체성의 관계

영화 속에서 몸은 단순한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기억과 정체성이 새겨지는 장소다. 특히 순자 할머니의 몸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적 기억을 담는 살아있는 아카이브로 기능한다. 그녀의 구부정한 자세, 능숙한 손놀림, 그리고 특유의 걸음걸이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문화적 지식의 체화된 형태다.

반면, 어린 데이빗의 심장 문제는 이민자 가족의 불안정한 상태를 신체화한 상징이다. 그의 "뛰지 말라"는 제약은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 아메리칸으로서 겪는 제한과 규제의 은유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서 데이빗이 뛰는 모습은 이러한 제약을 넘어서는 해방의 순간을 상징한다.

"너 심장 안 좋으니까 뛰지 마."

모니카의 이 단순한 당부는 사실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표면적으로는 건강에 대한 걱정이지만 심층적으로는 아메리칸 드림 속에서 너무 빨리 자신을 잃지 말라는 경고로도 읽힌다. 몸의 제약이 정신적, 문화적 정체성의 제약과 중첩되는 순간이다.

미나리를 심고 기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육체노동의 묘사는 단순한 사실주의적 표현이 아니다. 흙을 만지고, 물을 긷고, 작물을 수확하는 행위는 모두 '노동을 통한 장소성의 획득'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구현한다. 자신의 땀이 스며든 땅만이 진정한 '내 땅'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다.

시간의 지층학: 기억과 미래 사이

영화 '미나리'의 가장 혁신적인 측면은 시간을 선형적 흐름이 아닌 지층학적 구조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겹쳐지고 침투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는 이민자의 시간 경험을 정확히 포착한다 - 고향의 기억과 새로운 땅에서의 미래가 현재 속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복잡한 상태를 말이다.

특히 순자 할머니가 가져온 한국의 씨앗들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시간의 캡슐'로 기능한다. 이 씨앗들은 한국의 과거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미국 땅에서의 새로운 미래를 잉태한다. 미나리가 자라는 과정은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며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내는 시간적 연금술을 상징한다.

제이콥이 농장에서 직면하는 실패와 좌절은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다. 이는 그가 상상한 미래와 실제 현실 사이의 시간적 간극에서 오는 존재론적 위기다. 그가 꿈꾸는 미래는 항상 '곧 올 것'으로 유예되지만 현실의 시간은 냉혹하게 흘러간다. 이러한 시간적 비동시성(temporal asynchrony)은 이민자 경험의 핵심적 측면이다.

"내가 뭘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만 기다려줘."

제이콥의 이 간절한 요청은 시간에 대한 그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준다. 그에게 시간은 단순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성취해야 할 대상, 정복해야 할 영역이다. 반면 모니카에게 시간은 안정과 안전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두 인물의 시간 인식 차이는 영화의 중요한 긴장을 형성한다.

작은 제스처의 서사학: 비언어적 소통의 힘

영화 '미나리'는 거창한 독백이나 극적인 대립보다는 작은 제스처와 일상적 행위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는 '서사의 미니멀리즘'이라 부를 수 있는 독특한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고요한 저녁 식탁에서 오가는 눈빛, 할머니가 손자에게 건네는 작은 선물, 제이콥이 밭에서 흙을 만지는 방식 - 이러한 사소한 순간들이 실제로는 영화의 감정적 중심을 형성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영화가 '침묵의 서사학'을 발전시킨다는 점이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 표현되지 않은 감정들이 오히려 더 강력한 의미를 생성한다. 제이콥과 모니카 사이의 긴장된 침묵은 어떤 대화보다도 그들의 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동아시아 문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함축된 소통(implicit communication)'의 미학을 영화적 언어로 구현한 것이다.

"당신이 잘되면 나도 잘돼요."

모니카의 이 간결한 고백은 그들 관계의 본질을 담고 있다. 이 한 문장은 수많은 갈등과 오해를 뛰어넘는 궁극적 연대의 표현이다. 영화는 이처럼 극적인 순간보다는 일상 속 작은 진실들이 더 강력한 서사적 힘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작은 제스처의 서사학'은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영웅 서사나 극적 구원의 이야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는 미국 영화의 지배적 서사 구조에 대한 조용한 도전이자 아시안 아메리칸 경험을 표현하는 새로운 영화적 언어의 모색이다.

결론: 경계를 넘는 뿌리내림의 서사

'미나리'는 겉보기에는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지만 그 심층에는 '경계'와 '뿌리'라는 모순적 개념의 공존에 관한 철학적 탐구가 있다. 영화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유목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진정한 뿌리내림을 경험할 수 있는가? 고향은 지리적 개념인가, 아니면 정서적 구성물인가? 정체성은 보존되는 것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것인가?

리 아이작 정 감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단일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미나리라는 식물을 통해 하나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미나리는 한국에서 온 씨앗이지만 아칸소의 땅과 물을 통해 자란다. 그것은 원산지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제시하는 정체성의 모델이다 -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환경과의 대화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어떤 핵심을 유지하는 유동적 존재 방식이다.

결국 '미나리'는 이민자 서사를 넘어 현대인의 보편적 조건에 대한 성찰이다. 글로벌 시대,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서 '이방인'이며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협상하고 재구성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존재론적 불안정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희망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물과 흙 사이에서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 미나리처럼 우리의 정체성도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