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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urious basterds, 2009)

by reward100 2025. 5. 26.
inglourious basterds, 2009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제1장: 옛날 옛적, 나치 점령하 프랑스에서…

영화의 포문을 여는 것은 '유대인 사냥꾼'이라는 악명 높은 별명을 가진 나치 SS 대령 한스 란다(크리스토프 왈츠 분)와 프랑스 시골 농부 페리에 라파디트(드니 메노셰 분) 사이의 숨 막히는 대화 장면이다. 타란티노는 이 한정된 오두막이라는 공간 안에서 격렬한 액션이나 시각적인 자극 없이 오직 인물들의 대사와 미묘한 심리전만으로 극도의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놀라운 연출력을 유감없이 선보인다. 란다 대령은 겉으로는 부드럽고 교양 있는 신사의 태도를 유지하지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상대방의 허점을 파고들고 진실을 캐내려는 예리한 칼날과 함께 숨 막히는 위협이 담겨 있다. 그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라파디트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결국 그의 집 마룻바닥 아래 숨어있던 유대인 드레퓌스 가족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 장면에서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상대를 탐색하고 위협하며 진실을 폭로하는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제2장: 한스 란다라는 이름의 악마

크리스토프 왈츠에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을 안겨준 한스 란다 대령 캐릭터는 영화 역사상 가장 매혹적이고도 지적인 동시에 가장 공포스러운 악당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단순한 나치 장교의 전형성을 뛰어넘어 상대방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상황을 자신의 의도대로 교묘하게 조종하는 뛰어난 탐정이자 협상가,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잔혹한 행위도 서슴지 않는 냉혹한 살인마다. 그는 여러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겉으로는 예의 바르고 유머러스하며 심지어 매력적이기까지 한 태도 뒤에 상대방을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는 섬뜩한 잔혹함과 계산적인 냉철함을 숨기고 있다.

한스 란다: (쇼산나 앞에서, 스트루들에 곁들일 크림을 주문하며) "Attendez la crème!" (크림을 기다리시오!)

쇼산나가 유대인일 가능성(유제품을 피하는 코셔 율법)을 떠보며 그녀를 극도의 긴장감으로 몰아넣는 그의 여유로우면서도 잔혹한 성격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대사

란다는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일종의 지적인 유희나 자신의 뛰어난 직업적 능력의 발현으로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상대방이 자신의 정교한 덫에 걸려들어 공포에 떠는 모습을 즐긴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단순한 악당을 넘어 인간 내면에 잠재된 지적인 오만함과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완전한 부재가 얼마나 위험하고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3장: 쇼산나의 복수의 불꽃

한스 란다 대령의 총구 앞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유대인 소녀 쇼산나는 몇 년 후 파리에서 '엠마누엘 미미유'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작은 영화관을 운영하며 과거의 아픔을 숨긴 채 살아가려 한다. 그녀는 겉으로는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나치에 대한 깊은 증오와 복수심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나치 선전 영화의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는 프레데릭 졸러(다니엘 브륄 분)의 집요한 구애를 받게 되고 그의 영화 '국가의 자랑' 시사회를 자신의 극장에서 열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다시 한번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영화, 가장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복수의 무기:

쇼산나의 복수 계획에서 가장 핵심적이고도 상징적인 요소는 바로 '영화' 그 자체이다. 그녀는 나치 선전 영화 '국가의 자랑'이 상영되는 동안 자신이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짧은 필름을 스크린에 투사하여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나치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내 이름은 쇼산나 드레퓌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유대인의 복수다!"라는 그녀의 당당하고도 서늘한 외침은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곧이어 극장은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화염에 휩싸인다.

쇼산나의 복수는 개인적인 원한을 넘어 나치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수많은 유대인들의 한을 푸는 집단적인 복수의 성격을 띤다. 그녀는 연약하고 순수했던 소녀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역사를 바꾸는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으로 성장하며 영화의 또 다른 비극적이면서도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제4장: 언어의 유희, 오해의 비극, 그리고 영화광의 축제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말맛'이 살아있는 재치 넘치는 대사와 언어 자체를 긴장감과 유머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독창적인 장면 구성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역시 이러한 타란티노 스타일의 정수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에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다양한 언어가 등장하며 각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인물들의 정체성과 문화적 배경, 그리고 그들 사이의 미묘하고도 첨예한 권력 관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로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또한, 타란티노는 영화 전체에 걸쳐 자신만의 독특한 유머 감각과 영화광으로서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영화적 레퍼런스를 능숙하게 버무려 넣는다. 심각하고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도 예기치 않게 터져 나오는 블랙 유머와 황당한 설정들은 관객에게 묘한 쾌감과 함께 지적인 유희를 선사하며 영화의 전반적인 톤을 무겁지 않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결론: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사의 가장 무거운 역사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특유의 재기 발랄하고도 대담한 상상력, 스타일리시하고 파격적인 연출, 그리고 통쾌한 복수 판타지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관객에게 전에 없던 새롭고도 강렬한 영화적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과감하게 비틀고 허구적인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역사 이면에 숨겨진 진실과 인간 본성의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날카롭고도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스 란다라는 매혹적인 악당 캐릭터, 쇼산나의 불타는 스크린을 통한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복수, 그리고 '개떼들'의 무자비하지만 통쾌한 정의 구현은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다양한 해석과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단순한 오락 영화나 역사 왜곡 논란을 넘어 역사와 영화, 폭력과 복수, 그리고 정의와 윤리라는 복잡하고도 묵직한 주제들을 쿠엔틴 타란티노만의 독창적이고도 대체 불가능한 방식으로 탐구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대담하고도 논쟁적이며 동시에 가장 영화적인 즐거움으로 가득 찬 걸작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