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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Risen)": 로마 호민관의 수사 보고서, 혹은 증거 너머의 진실

by reward100 2025. 4. 20.

 

Film, Risen, 2016

예루살렘의 미스터리: 사라진 시체와 흔들리는 제국

케빈 레이놀즈(Kevin Reynolds) 감독의 2016년 "부활"은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매우 독특한 시각에서 접근한다. 영화는 신앙인의 경건한 시선이나 성서의 기록을 그대로 따라가는 대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지 않는 로마군 호민관(Tribune) 클라비우스 (Clavius)(Joseph Fiennes 분)의 눈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는 일종의 역사 추리극 형식을 취한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후 사흘 만에 그의 시체가 무덤에서 사라지고 그가 부활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유대 지도자들과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Pontius Pilate)(Peter Firth 분)는 민란을 우려한다. 빌라도는 유능하고 냉철한 군인 클라비우스에게 시체를 찾아 소문을 잠재우라는 임무를 내린다. 영화는 이 '사라진 시체 찾기'라는 미스터리를 따라가며 로마 제국의 질서와 합리성을 대변하는 클라비우스가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앞에서 그의 세계관이 흔들리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나는 이 영화를 단순한 종교 영화가 아닌 '증거'와 '믿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이성적인 탐구가 초월적인 진실 앞에서 부딪히는 한계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로 읽고자 한다. 클라비우스는 로마의 군인이자 실용주의자다. 그는 오직 눈에 보이는 증거와 논리적인 추론만을 신뢰한다. 그의 목표는 명확하다.

클라비우스 : "I seek a body." (나는 시체를 찾는다.) / "I seek certainty." (나는 확실성을 추구한다.)

그는 부활 소동을 광신도들의 망상이나 제자들의 속임수로 치부하며 체계적인 수사를 통해 시체를 찾아내고 사건을 종결시키려 한다. 영화는 그의 시점을 충실히 따라가며 관객 또한 마치 탐정이 된 것처럼 사건의 단서들을 하나씩 접하게 만든다. 이는 전통적인 종교 영화와는 다른 접근 방식으로 믿지 않는 자의 시선에서 출발하기에 오히려 더 넓은 관객층에게 사건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측면이 있다.

수사 과정: 증언, 증거, 그리고 풀리지 않는 의문

클라비우스는 그의 충실한 부관 루시우스 (Lucius)(Tom Felton 분)와 함께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그는 무덤을 지키던 로마 병사들, 시체를 염했던 여인들(막달라 마리아 (Mary Magdalene)(María Botto 분) 포함),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을 차례로 심문한다. 그는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물리적인 증거(비어 있는 무덤, 남겨진 수의 등)를 면밀히 조사하며 제자들의 행방을 추적한다. 그의 수사 방식은 매우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다. 그는 회유와 협박을 동원하고 잠복과 미행을 통해 제자들의 아지트를 급습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클라비우스는 혼란에 빠진다. 병사들의 증언은 일관되지 않고 어딘가 겁에 질려 있으며 제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과 확신에 차 있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느껴지는 평온함과 확신은 그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는 제자들이 시체를 훔쳤다는 심증을 굳히지만 그들의 행동 방식은 단순한 사기꾼이나 선동가로 보기에는 너무나 진실되고 용기 있다. 물리적인 증거는 부재하는데 목격자들의 확신에 찬 증언과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는 그의 이성적인 판단을 계속해서 뒤흔든다. 클라비우스는 루시우스에게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넌지시 드러내기도 한다.

클라비우스 : "What frightens you more? A Nazarene claiming divinity... or the possibility that he was right?" (무엇이 더 두려운가? 신성을 주장하는 나사렛 사람인가... 아니면 그가 옳았을 가능성인가?)

이 대사는 영화의 핵심 딜레마를 보여준다. 로마의 질서와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기존의 세계관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눈앞의 현상을 받아들일 것인가. 클라비우스의 수사는 단순한 사건 해결을 넘어 그 자신의 신념 체계에 대한 시험이 되어간다.

만남: 이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체험

결정적인 전환점은 클라비우스가 제자들의 은신처를 급습했을 때 찾아온다. 그는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있는, 십자가에서 분명히 죽었던 예수/예슈아 (Yeshua)(Cliff Curtis 분)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이 만남은 클라비우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혼란스러워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목격'이라는 증거 앞에서 그의 합리주의적 세계관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만남을 신비주의적이거나 과장된 방식으로 그리지 않는다. 예수는 조용하고 평온한 모습으로 제자들과 대화하고 음식을 나눈다. 그의 몸에는 처형의 상처가 남아있다. 클리프 커티스는 온화하면서도 깊은 존재감을 지닌 예수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클라비우스는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며 그의 표정에는 경악과 불신, 그리고 경외감이 복잡하게 교차한다. 이 순간, 그는 더 이상 사건을 수사하는 로마군 장교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존재와 대면한 한 인간이 된다.

이후 클라비우스는 임무를 포기하고 제자들을 따라나선다. 그는 여전히 완전히 믿음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목격한 것을 이해하고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그들과 동행하기로 결심한다. 갈릴리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그는 시몬 베드로 (Simon Peter)(Stewart Scudamore 분), 사도 요한 (John)(Mish Boyko 분), 바돌로매 (Bartholomew)(Stephen Hagan 분) 등 제자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신앙과 예수가 남긴 가르침을 접하게 된다. 그는 여전히 질문하고 의심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의 여정은 로마적인 '힘과 질서'의 세계에서 이해와 용서, 믿음이라는 새로운 가치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불가해한 상황을 이렇게 요약할지도 모른다.

클라비우스 : "I have seen two things which cannot reconcile: A man dead without question, and that same man alive again." (나는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를 보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죽은 사람,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이 다시 살아있는 것을.)

변화와 선택: 로마 군인의 길 너머

갈릴리에서 클라비우스는 부활한 예수와 다시 한번 그리고 좀 더 가까이서 마주하게 된다. 그는 예수와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그가 행하는 치유의 기적을 목격하기도 한다. 이 경험들은 그의 남은 의심을 점차 허물어뜨린다. 그는 더 이상 로마의 호민관으로서의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목격한 진실 앞에서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예수가 하늘로 승천하는 마지막 기적까지 목격한 후 클라비우스는 로마로 복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갑옷과 무기를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찾아 광야로 떠난다. 영화는 그가 완전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고 명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모습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다. 그는 더 이상 로마 제국의 힘과 영광을 추구하지 않으며 세상의 권력이나 질서 너머의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그의 변화는 이성적인 탐구가 믿음으로 이어지는 과정, 혹은 적어도 기존의 세계관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게 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부활>은 부활 사건을 신앙의 눈으로만 그리는 대신 회의적인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그 사건의 충격과 파급력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조셉 파인즈는 냉철한 군인에서 진실 앞에서 고뇌하고 변화하는 클라비우스의 복잡한 심리를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영화의 고증이나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으나 부활이라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이라는 가정 하에 한 이성적인 인간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탐구하는 서사적 실험으로서는 충분히 흥미롭고 성공적이다. 그것은 단순한 종교 선전 영화가 아니라 믿음과 의심, 증거와 체험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잘 만들어진 역사 드라마/미스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