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붉은 행성의 정원사: '마션(The Martian)'이 심은 인류의 생명의지

by reward100 2025. 4. 11.

 

Film, The Martian, 2015

 

우주는 침묵한다. 그곳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아무도 들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소리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The Martian)'은 표면적으로는 생존 영화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인류의 첫 행성 정원사의 이야기다. 붉은 황무지에 생명을 심고, 가꾸고, 결실을 맺는 한 인간의 진정한 '테라포밍(terraforming)' 서사이다.

황무지에 핀 감자꽃

화성에 홀로 남겨진 식물학자 마크 와트니(Matt Damon)의 이야기는 통상적인 생존 서사를 넘어선다. 그는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불모지에 생명을 일구는 첫 화성 농부가 된다. 감자를 심는 그의 행위는 지구 역사상 가장 멀리 뻗어나간 농경의 시작이다. 인류의 확장된 영토에서 벌어지는 최초의 농업 혁명이자 인류 진화의 새로운 장이다.

영화 속 화성은 과학적 정확성을 추구하지만 상징적으로는 인간 내면의 불모지, 우리가 마주하는 절망의 순간을 대변한다. 와트니가 감자를 키우는 과정은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닌 희망의 가능성을 심는 행위다. 그의 진정한 적은 화성의 혹독한 환경이 아니라 불가능한 상황 앞에서 포기하려는 인간의 본능이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와트니가 자신을 '우주 해적'이라 칭하는 상황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통제권 바깥에 있으므로 그는 국제법상 해적과 같다는 논리다. 이 유머러스한 상황 이면에는 인류 역사의 탐험가들이 직면했던 동일한 실존적 질문이 깔려있다. 누구의 영토인지 모를 곳에서 법과 질서의 경계 밖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붉은 행성의 로빈슨 크루소를 넘어

'마션'이 다른 생존 영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주인공의 태도에 있다. 와트니는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나 로버트 저메키스의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들과 달리 고립에 대한 철학적 고뇌보다 과학적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그는 화성이라는 적대적 환경을 두려워하거나 신비화하지 않고 해결해야 할 일련의 문제들로 분해한다. 이는 현대 인류의 위기 대응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와트니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화성의 토양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장면은 영화의 핵심을 담고 있다. 그는 지구의 생명을 외계에 이식하는 첫 번째 인간이 된다. 이는 단순한 생존 기술이 아니라 인류의 확장, 생명의 영역 확대라는 거대한 서사의 첫 장이다.

화성 표면의 붉은색은 영화 전반에 걸쳐 중요한 시각적 메타포로 작용한다. 이 붉은색은 죽음과 생명의 이중적 상징성을 지닌다. 산화철로 붉게 변한 화성의 표면은 죽음의 색이지만 동시에 지구에서는 생명의 근원인 혈액의 색이기도 하다. 와트니는 이 죽음의 색에서 생명을 일구어내는 역설적 임무를 수행한다.

의사소통의 우주적 의미

영화 속에서 가장 깊은 순간 중 하나는 와트니가 오래된 패스파인더 탐사선을 통해 지구와 소통을 재개하는 장면이다. 이는 단순한 구조 요청의 시작이 아니라 고립된 인간 존재가 다시 인류의 집단적 지성과 연결되는 철학적 순간이다. 16분의 통신 지연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인류의 네트워크에 접속한다.

제트추진연구소(JPL)의 과학자 민디 박(Benedict Wong)과 NASA 센터의 테디 샌더스(Jeff Daniels), 미치 헨더슨(Sean Bean) 등으로 이루어진 지구의 팀이 와트니를 구하기 위해 벌이는 노력은 현대 사회의 집단 지성의 힘을 상징한다. 인류는 개인이 아닌 네트워크로 연결된 집단으로서 가장 강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영화가 국제적 협력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중국 우주국(CNSA)의 결정적 도움은 냉전 시대 이후 우주 개발이 가진 협력적 본질을 상기시킨다. 화성에 홀로 남겨진 와트니를 구하기 위해 국가 간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은 인류가 직면할 수 있는 더 큰 위기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연대의식을 암시한다.

우주 항해의 고전적 서사와 현대적 해석

헤르메스 우주선의 선장 멜리사 루이스(Jessica Chastain)와 승무원 베스 요한센(Kate Mara), 릭 마르티네즈(Michael Peña), 크리스 벡(Sebastian Stan), 알렉스 보겔(Aksel Hennie)이 와트니를 구하기 위해 돌아오는 결정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영웅담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현대의 아르고 항해단이며 그들의 여정은 동료를 찾아 위험한 바다를 건너는 오디세우스의 여정과 닮았다.

또한 영화는 인류의 우주 개척이 가지는 의미를 재해석한다. 전통적으로 우주 영화들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를 다룬다면 '마션'은 우주 자체가 아닌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인간성을 유지하고 확장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와트니가 화성에서 보낸 날들은 결국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다.

언어와 유머로 이겨내는 고립

와트니의 비디오 로그는 단순한 기록 수단이 아니라 그의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필수적 도구다. 언어는 그가 자신의 경험을 구조화하고 혼돈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흥미롭게도 와트니는 끊임없이 유머를 사용한다. 이는 생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생존이란 단순히 육체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정신의 탄력성을 유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와트니의 유머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채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인지적 방어기제 중 하나다. 그는 코미디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하고 절망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부조리와의 화해'와 맞닿아 있다.

인간의 정원사, 우주의 농부

와트니가 화성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행위는 영화의 중심 메타포다. 재배(cultivation)라는 단어는 땅을 가꾸는 것과 동시에 문화(culture)를 발전시킨다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와트니는 화성에 최초의 문화적 흔적을 남기는 인류의 대표자가 된다.

디스코 음악과 70년대 TV 프로그램은 그가 화성에 이식한 지구 문화의 단편들이다. 이는 다른 우주 영화들이 보여주는 엄숙하고 미래지향적인 우주 개척의 이미지와는 상반된다. 와트니는 첨단 과학자이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인 취향과 한계를 지닌 인물이다.

감자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와트니는 인간의 배설물을 비료로 활용한다. 이는 우주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원초적이고 현실적인 장면이지만 동시에 깊은 상징성을 지닌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물학적 과정마저 생명을 유지하는 순환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자연의 순환 원리를 극단적인 환경에서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정적 순간의 아이러니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와트니가 자신을 구하러 온 헤르메스 우주선을 향해 '아이언맨'처럼 날아가 멜리사 루이스 선장과 만나는 장면이다. 이 순간은 영화 전체에 깔려있는 아이러니를 완성한다. 그는 화성에서 가장 원시적인 생존 방식(농업)으로 살아남았지만 탈출은 가장 미래적인 기술(우주선과 추진체)에 의존한다.

이는 인류 진화의 전체 스펙트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원시적 생존 기술과 최첨단 기술을 동시에 활용하는 모순적 존재다. 와트니의 여정은 이러한 인류의 본질적 이중성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의 불굴의 의지와 화성에서 살아남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은 인간의 생존 본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와트니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았고 그것이 결국 구조팀이 그를 찾아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붉은 모래 위에 쓰인 인류의 의지

화성의 붉은 황무지는 영화 내내 적대적 환경으로 묘사되지만 와트니에게는 점차 친숙한 집이 되어간다. 그가 화성에서 보낸 531솔(화성1일: 지구시간으로 약 24시간 40분)은 인류가 다른 행성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하는 기간이다. 지구인으로서 화성인이 된 와트니의 정체성 변화는 인류의 미래 진화 방향을 암시한다.

영화 속에서 와트니가 남긴 발자국들은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발자국처럼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다만 차이점은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이 인류의 첫 방문을 상징한다면 와트니의 발자국들은 인류의 정착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한 걸음에서 살아가는 걸음으로의 진화다.

귀환, 그리고 다음 항해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은 와트니의 지구 귀환과 그후 NASA에서 새로운 우주 비행사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영웅 서사의 전형적인 완성이다. 영웅은 시련의 세계에서 지식과 경험을 얻어 돌아와 다음 세대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영화적 클리셰가 아닌 인류 문명이 지식을 축적하고 발전시켜온 근본적인 방식을 반영한다.

과학자로서의 와트니는 자신의 경험을 체계화하고 전달함으로써 개인의 생존 경험을 인류 전체의 자산으로 변환시킨다. 이는 과학의 본질적 가치를 상징한다. 개인의 경험과 발견이 공유지식이 되고 더 넓은 탐험의 기반이 되는 순환적 과정이다.

리들리 스콧의 '마션'은 표면적으로는 한 남자의 생존 이야기지만 그 심층에는 인류의 확장성과 적응력에 대한 웅장한 서사가 자리하고 있다. 와트니는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라 인류의 첫 번째 행성간 정원사이자 붉은 황무지에 생명의 씨앗을 심은 우주 농부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직면할 미래의 도전들을 미리 경험한다. 인류가 지구를 넘어 다른 행성으로 확장해갈 때 우리는 와트니처럼 낯선 환경에서 생명을 일구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첨단 기술이 아닌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와 문제해결 능력임을 깨닫게 된다.

붉은 행성에 인류의 의지로 심어진 작은 감자 새싹처럼 우리의 미래는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에서도 생명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마크 와트니는 단순한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재된 생존자이자 개척자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