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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동물사전': 인간 본성의 야생성에 관한 고찰

by reward100 2025. 4. 11.

 

Film, Fantastic Beasts and Where to Find Them, 2016

 

데이비드 예이츠(David Yates) 감독의 '신비한 동물사전(Fantastic Beasts and Where to Find Them)'은 일반적으로 '해리 포터' 세계관의 프리퀄로서 새로운 마법 세계를 소개하는 작품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한 판타지 모험물이 아닌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야생성(wildness)과 그것의 억압,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체성 위기를 탐구하는 심오한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다. 마법 동물들은 단지 시각적 즐거움이나 세계관 확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점차 잃어가는 우리 자신의 본질적 야성을 상징한다.

억압된 야성의 의인화, 뉴트 스캐맨더

뉴트 스캐맨더(Eddie Redmayne 분)는 표면적으로는 마법동물학자지만 보다 깊은 차원에서 그는 현대 문명이 통제하지 못하는 야생성의 수호자이다. 에디 레드메인(Eddie Redmayne)이 구현한 뉴트의 불안정한 눈맞춤, 특유의 어색한 몸짓, 그리고 사회적 규범에 대한 무관심은 단순한 괴짜 캐릭터의 특성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세계의 규칙과 제도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인간 정신의 야생적 측면을 체현한다. 그가 가방 속에 창조한 작은 생태계는 현대 사회가 점점 더 밀어내고 있는 자연의 혼돈과 아름다움에 대한 은유다.

흥미롭게도 레드메인은 뉴트를 연기할 때 의도적으로 "땅과의 연결"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의 구부정한 자세와 아래를 향한 시선은 하늘(이성과 질서)보다 땅(본능과 자연)에 더 가까운 인물임을 암시한다. 이는 마법사 사회조차도 점점 더 관료화되고 제도화되어가는 시대적 배경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

도시 풍경 속 야생의 은유

1920년대 뉴욕이라는 배경 선택은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이 아니다. 이 시기는 미국에서 현대화와 산업화가 급속도로 발전하며 자연을 정복했던 시기와 맞물린다. 영화는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서 마법 동물들이 탈출하고 숨바꼭질하는 장면을 통해 현대 도시 환경에서 억압된 자연의 복귀라는 테마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자연과 문명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뉴트의 가방 속 세계는 자연의 완전한 야생 상태가 아닌 인간의 보살핌과 자연의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하이브리드적 유토피아다. 이는 현대 사회가 지향해야 할 균형점에 대한 흥미로운 제안으로 볼 수 있다.

억압의 진정한 야수, 옵스큐러스

영화의 가장 강력한 은유는 단연 '옵스큐러스'라는 개념이다. 마법적 정체성을 억압당한 크레덴스(Ezra Miller 분)의 내면에서 형성된 파괴적 어둠의 존재는 자연스러운 본성이 억압될 때 발생하는 심리적 트라우마와 사회적 병리의 완벽한 시각화다. 에즈라 밀러(Ezra Miller)가 연기한 크레덴스의 움츠러든 자세와 억눌린 분노는 단순한 캐릭터 설정을 넘어 현대 사회의 규범과 기대에 의해 자신의 본질을 부정당한 모든 이들의 내면을 대변한다.

옵스큐러스의 검은 파동이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들은 억압된 자아가 결국 사회적 형태로 폭발할 수밖에 없다는 심오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는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보면 프로이트의 '억압된 것의 귀환(return of the repressed)' 개념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한 사례다.

메리 루 바본과 현대 원시주의 비판

새만다 모턴(Samantha Morton) 분의 메리 루 바본은 표면적으로는 마법에 대한 종교적 광신자로 보이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그녀는 '원시적인 것'에 대한 현대 사회의 양가적 태도를 대변한다. 흥미롭게도 그녀는 마법(야생의 상징)을 억압하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힘을 갈망한다. 이는 현대 사회가 자연과 본능에 대해 취하는 모순적 태도—한편으로는 통제하고 문명화하려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진정성'과 '원시적 힘'을 로맨틱하게 동경하는—를 반영한다.

새만다 모턴은 이 양가성을 뛰어난 연기력으로 포착해냈다. 그녀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광신적 열정은 단순한 증오가 아닌 자신도 인정하지 못하는 욕망과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표출이다.

그레이브스와 그린델왈드: 야성의 조작자

콜린 파렐(Colin Farrell)이 연기하고 후에 그린델왈드(Johnny Depp 분)로 밝혀지는 그레이브스는 야생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조작하고 무기화하려는 시도를 대변한다. 이는 현대 사회가 자연과 야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상품화하고 통제된 형태로 제시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조니 뎁(Johnny Depp)의 등장으로 암시되는 그린델왈드의 비전은 야생과 질서의 극단적 통합—자연의 힘을 완전히 인간의 의지에 종속시키는—이라는 디스토피아적 가능성을 상징한다.

특히 그레이브스가 크레덴스를 조종하는 방식은 현대 권력이 억압된 집단의 분노와 소외감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티나 골드스타인: 제도와 본능 사이의 균형

캐서린 워터스턴(Katherine Waterston) 분의 티나 골드스타인은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캐릭터 중 하나다. 그녀는 마법부의 일원이면서도 규칙을 어기고, 제도권 안에 있으면서도 그 한계를 인식한다. 티나는 야생(뉴트)과 질서(마법부)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현대인의 여정을 상징한다. 워터스턴의 섬세한 연기는 이러한 내적 갈등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티나의 캐릭터 아크는 단순히 낭만적 관계의 발전이 아니라, 제도적 사고에서 벗어나 보다 유기적이고 상황에 맞는 윤리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한 도전—기존의 규칙과 체계가 더 이상 복잡한 현실을 담아내지 못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성찰을 제공한다.

제이콥 코왈스키: 마법 없는 세계의 경이로움

단 포글러(Dan Fogler) 분의 제이콥 코왈스키는 표면적으로는 코믹 릴리프 역할을 하지만 그의 존재는 영화의 중심 테마에 깊이를 더한다. 머글인 그는 역설적으로 가장 '마법적인' 인물이다.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와 실용주의에 물들지 않고 경이로움과 신비에 대한 개방성을 유지하는 그의 모습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어떤 본질적 태도를 상기시킨다.

특히 제이콥이 마법 세계를 경험하고 자신의 베이커리에 그 영감을 불어넣는 과정은 억압된 상상력과 경이로움이 현실 세계로 회귀하는 아름다운 사례다. 포글러의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연기는 이러한 테마를 관객들에게 깊이 전달한다.

퀴니 골드스타인: 감정의 마법사

앨리슨 수돌(Alison Sudol) 분의 퀴니는 단순한 마음을 읽는 능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녀의 레질리먼시 능력은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억압되고 있는 감정적 소통과 공감의 능력을 상징한다. 퀴니와 제이콥의 관계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이성적 언어를 넘어선 감정적 연결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다.

수돌은 퀴니의 표면적 순진함 뒤에 숨겨진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그녀의 캐릭터는 현대 사회에서 종종 '비합리적'이라며 폄하되는 감정적 지성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가방 속 세계: 대안적 공존의 가능성

뉴트의 마법 가방 속 세계는 영화의 가장 시적인 은유다. 이 공간은 다양한 생명체들이 그들 각자의 본성을 존중받으며 공존하는 유토피아적 비전을 제시한다. 흥미롭게도 이 세계는 완전한 자연 상태가 아닌 인간의 돌봄과 자연의 자유가 균형을 이룬 공간이다. 이는 인간과 자연, 질서와 혼돈, 문명과 야생이 대립항이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로 존재할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 전체에서 가장 마법적인 순간들은 이 가방 속 세계를 탐험할 때 등장한다. 이 장면들은 단순한 시각적 구경거리를 넘어 우리가 잃어버린 다양성과 경이로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결론: 억압된 야생성의 귀환

 

'신비한 동물사전'은 표면적으로는 마법 동물을 찾아 나서는 모험담이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는 현대 문명이 억압해온 인간 본성의 야생적 측면이 다시 부상하는 과정에 대한 우화다. 영화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야생성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되지 못할 때 파괴적인 형태로 귀환한다. 뉴트가 동물들을 대하는 방식—통제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그들의 본성을 존중하는—은 우리 자신의 억압된 본성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교훈을 제공한다.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은 판타지 장르의 외피를 빌려 현대 사회의 근본적 딜레마를 탐구했다. '신비한 동물'들은 결국 우리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억압된 측면들이며 그것들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where to find them)'에 대한 질문은 결국 자기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이 영화는 단순한 '해리 포터' 스핀오프가 아닌 현대인의 정체성 위기와 자연으로의 회귀 욕망을 다룬 심오한 우화로 재평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