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영화 '안다둔(Andhadhun)'은 볼리우드 영화 산업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다. 감독 스리람 라그반(Sriram Raghavan)의 이 작품은 기존 인도 영화가 가지고 있던 모든 전형성을 타파하고 전 세계 관객들에게 인도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흔히 볼리우드 영화라고 하면 3시간에 가까운 상영 시간,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화려한 댄스 장면, 멜로드라마적 요소의 과잉, 그리고 예측 가능한 해피엔딩 등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안다둔'은 이런 전형적인 인도 영화의 공식과 차별화하여 블랙 코미디와 스릴러, 그리고 범죄 영화의 요소를 절묘하게 조합해낸 수작이다.
시각적 맹점을 이용한 이야기의 전개
'안다둔'은 '맹목적(Blind Tune)'이라는 제목처럼 시각적 맹점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아케이(아유쉬만 쿠라나 분)는 자신이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인 척하며 음악적 영감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가짜 맹인 행세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를 빠뜨리고, 한 유명 영화배우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이때부터 영화는 관객들을 속이고 뒤집고 놀라게 하는 예측 불가능한 서사로 치닫는다.
이 영화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은 관객들의 '시각'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연출에 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보지 못하는가?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영화 전체에 걸쳐 관객들을 따라다닌다. 마치 주인공 아케이가 맹인 행세를 하며 겪는 아이러니처럼 관객들 역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긴장감 속에서 서사를 경험하게 된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사적 유연성
'안다둔'은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영화는 순간순간 블랙 코미디로, 때로는 심각한 스릴러로, 또 어느 순간에는 범죄 영화나 심지어 로맨스로 변모한다. 이러한 장르적 유연성은 관객들이 영화의 다음 전개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이는 영화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장르적 변화가 단순한 실험이나 혼합에 그치지 않고 서사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케이의 거짓말이 점점 더 큰 거짓말을 낳고 그가 점점 더 복잡한 상황에 빠져들면서 영화의 톤과 분위기도 변화한다. 이런 점에서 '안다둔'은 장르 영화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그것을 비틀고 재해석하는 메타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음악의 역할과 상징성
'안다둔'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나 감정 고조의 도구를 넘어, 서사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기능한다. 주인공이 피아니스트라는 설정은 영화의 플롯을 이끌어가는 주요 장치일 뿐만 아니라 음악을 통해 캐릭터의 내면 세계와 감정적 변화를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특히 영화 속 피아노 연주 장면들은 단순히 음악적 휴식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사의 중요한 전환점이나 캐릭터의 심리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케이가 눈을 감고 피아노를 연주할 때, 관객들은 그가 진정으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보지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음악은 영화의 중심 주제인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에 대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연기의 깊이와 캐릭터의 복잡성
'안다둔'의 또 다른 강점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 있다. 아유쉬만 쿠라나는 시각장애인 행세를 하는 피아니스트 역할을 통해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고 인도 영화계에서 상업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배우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특히 그가 연기하는 '보지 못하는 척하는' 인물의 이중성은 영화의 주제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타부가 연기한 심바의 아내 캐릭터 역시 단순한 악역을 넘어 복잡한 층위를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의 계산적이면서도 충동적인 행동 그리고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캐릭터의 다양한 면모는 관객들에게 불편함과 매력을 동시에 선사한다. 이처럼 '안다둔'의 캐릭터들은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를 거부하고 인간의 복잡한 욕망과 도덕적 모호함을 묘사한다.
인도 영화 산업에 미친 영향
'안다둔'은 상업적 성공뿐만 아니라 비평적으로도 큰 호평을 받으며 인도 영화 산업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 영화는 볼리우드 영화가 전통적인 공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실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이는 후속 작품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안다둔'은 인도 영화가 자국 시장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보편적 언어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영화는 국제 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았으며 해외 관객들에게도 인도 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결말의 모호함과 해석의 다양성
'안다둔'의 결말은 영화의 나머지 부분만큼이나 예측 불가능하고 다층적이다. 영화는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는 대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며 관객들의 해석을 요구한다. 이러한 열린 결말은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이 진실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더 중요한 진실인가?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아케이의 상태와 선택에 대한 모호함은 관객들에게 영화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전통적인 인도 영화의 해피엔딩 공식을 탈피한 것으로 '안다둔'이 가진 예술적 야심과 관객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결론: 새로운 인도 영화의 지평
'안다둔'은 인도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전통적인 볼리우드 영화의 공식을 벗어나면서도 인도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감성과 스타일을 유지한다. 예측 불가능한 서사,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성, 복잡한 캐릭터 구성, 그리고 음악의 효과적인 활용 등은 '안다둔'을 단순한 오락물이 아닌 예술적 깊이를 갖춘 작품으로 만든다.
무엇보다 '안다둔'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보는 것'과 '진실'에 대한 성찰이다. 영화는 우리에게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이 항상 진실이 아닐 수 있으며 때로는 '보지 못하는 것' 혹은 '보지 않으려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철학적 질문은 영화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와 조화롭게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즐거움과 사유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안다둔'은 인도 영화가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선구자적 작품으로 볼리우드 영화 산업의 변화와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영화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