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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17"- 원테이크 미학으로 구현된 전장의 리얼리즘과 인간 드라마

by reward100 2025. 5. 28.
1917, (2019)

1917

샘 멘데스 감독 | 조지 맥케이, 딘-찰스 채프먼 주연 | 2019

경험의 극대화: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혁신 기술을 넘어선 서사의 몰입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역사의 한복판으로 관객을 단숨에 끌어들이는 영화적 경험의 극한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기술적 성취는 영화 전체가 마치 하나의 연속된 쇼트(원 컨티뉴어스 숏)로 촬영된 것처럼 보이도록 연출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실제로는 여러 개의 긴 테이크를 교묘하게 편집하여 연결한 것이지만 이러한 연출 방식은 두 젊은 영국 병사 스코필드(조지 맥케이 분)와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 분)가 위험천만한 임무를 전달하기 위해 적진을 가로지르는 하루 동안의 여정을 실시간으로 따라가는 듯한 극도의 현장감과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 혁신적인 촬영 기법은 단순한 시각적 유희를 넘어 전쟁의 긴박함, 예측 불가능성, 그리고 주인공들이 느끼는 공포와 절박함을 관객이 온전히 체험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서사적 장치로 작용한다. 본 감상평에서는 '1917'이 어떻게 기술적 도전을 통해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창조하고 전쟁의 비극과 인간애라는 보편적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시간과의 싸움: 전령의 절박한 임무 멈출 수 없는 발걸음, 생사를 가르는 메시지

영화의 서사는 매우 단순 명료하다. 1917년 4월 6일, 독일군이 후퇴한 서부 전선.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다음 날 새벽으로 예정된 아군 부대의 공격을 중지시키라는 긴급 명령을 전달받는다. 독일군이 함정을 파고 전략적으로 후퇴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1600명의 아군,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된 블레이크의 형을 구하기 위해 두 병사는 목숨을 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참호, 철조망, 폐허가 된 농가, 강물, 그리고 불타는 도시를 거쳐 적진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이들의 임무는 시간과의 싸움이자 예측 불가능한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는 이들의 여정을 과장된 영웅담이나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으로 채우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시점에서 담담하게 따라간다. 관객은 마치 세 번째 병사가 되어 그들의 숨 막히는 여정에 동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매 순간 그들이 느끼는 긴장과 공포, 그리고 피로감을 공유하게 된다.

몰입을 위한 선택: 서사의 단순성과 캐릭터의 보편성

감독은 의도적으로 복잡한 정치적 배경 설명이나 캐릭터들의 깊은 과거사를 배제한다. 이는 관객이 두 병사의 현재 임무와 그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 자체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특별한 영웅이 아닌 전쟁터에 내몰린 평범한 젊은이들로 그려진다. 그들의 대화는 소박하고 두려움과 그리움, 그리고 전우애와 같은 보편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이러한 설정은 관객이 특정 캐릭터에 감정 이입하기보다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 그 자체의 모습에 공감하고 그들의 여정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도록 한다.

여정 중간중간 마주치는 예상치 못한 사건들 – 독일군과의 갑작스러운 조우, 부비트랩, 그리고 동료의 희생 – 은 전쟁의 비정함과 허무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블레이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스코필드에게 엄청난 충격과 함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더 큰 책임감을 안겨준다. 홀로 남겨진 스코필드가 겪는 고독과 절망,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인간의 강인한 생존 의지와 동료애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미장센과 촬영: 전장의 현실과 시적 순간들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가 포착한 빛과 어둠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1917'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다. 그는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극한의 도전 속에서도 놀라운 기술적 완성도와 함께 숨 막히는 영상미를 선보인다. 카메라는 때로는 주인공들의 등 뒤를 바짝 따르며 그들의 시점을 공유하고 때로는 광활한 전장의 풍경을 담아내며 전쟁의 스케일과 황량함을 보여준다. 진흙탕과 시체가 나뒹구는 참혹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도 폐허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이나 새벽녘의 고요한 강물, 불타는 도시의 실루엣 등 시적인 순간들을 포착하여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존재하는 미묘한 아름다움과 희망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특히 조명 활용은 이 영화의 백미다.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조명탄이 터지는 순간의 섬광, 어둠 속에서 깜빡이는 불빛, 새벽녘의 푸른빛 등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각 장면의 분위기와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스코필드가 불타는 에쿠스트 시를 가로지르는 야간 장면은 마치 지옥도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이미지로 관객을 압도하며 동시에 그의 절박함과 고독감을 극대화한다. 토머스 뉴먼의 절제되면서도 감정을 고조시키는 음악 또한 영화의 몰입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전쟁의 참상과 인간애: 극한 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가치 희생, 연대,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책임

'1917'은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보다는 전쟁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 속에서 발현되는 인간적인 가치들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전쟁의 무의미함과 비극성을 고발하는 동시에 극한의 상황에서도 서로를 의지하고 희생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애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스코필드가 우연히 만난 프랑스 여성과 아기에게 잠시나마 온정을 베푸는 장면이나 동료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나누는 장면들은 전쟁의 비인간적인 폭력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성의 증거로 다가온다.

이름 없는 병사들의 헌신에 대한 헌사

샘 멘데스 감독은 자신의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담에서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평범한 병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헌사로 읽힐 수 있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의 임무는 거대한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사건은 아닐지라도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그들의 용기와 책임감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스코필드가 마침내 임무를 완수하고 나무 아래에 홀로 앉아 가족사진을 바라보는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전쟁의 상처와 동료를 잃은 슬픔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지친 표정은 전쟁의 허무함과 함께, 살아남은 자로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무게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영화는 전쟁 영웅담을 그리기보다는 전쟁의 참혹함을 겪어낸 개인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현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반전의 메시지를 더욱 강력하게 전달한다.

총평: 시대를 초월하는 강렬한 영화적 체험

'1917'은 혁신적인 촬영 기법과 탄탄한 서사,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수작이다. 샘 멘데스 감독은 관객을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현실 한가운데로 데려가 마치 두 병사와 함께 숨 쉬고 뛰는 듯한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영화는 단순한 전쟁 영화를 넘어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용기와 희생, 그리고 연대의 가치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휴먼 드라마이기도 하다. 기술적 성취와 예술적 깊이를 동시에 갖춘 '1917'은 영화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경험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며 전쟁의 비극을 잊지 않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