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조조 래빗(Jojo Rabbit, 2019)" 감상평

by reward100 2025. 5. 22.

 

Jojo Rabbit, 2019

조조 래빗 (Jojo Rabbit, 2019)

광기의 시대, 히틀러라는 이름의 토끼, 그리고 사랑으로 춤추는 법을 배우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조조 래빗'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사의 가장 어두운 페이지를 10살 소년의 순진무구한 시선과 기상천외한 상상력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재해석한 대담하고도 눈부신 작품이다. 히틀러 유겐트에 열광하는 순진한 나치 소년 조조와 그의 상상 속 친구인 어딘가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운 히틀러, 그리고 벽장 속에 숨어 지내는 유대인 소녀 엘사의 만남은 웃음과 눈물, 날카로운 풍자와 따뜻한 감동이 기묘하게 뒤섞인 한 편의 '반전(反戰) 동화'를 직조해낸다. 이 글은 '조조 래빗'이 나치즘의 광기를 어떻게 풍자적으로 해체하고 혐오와 편견이 만연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인간애라는 희망의 춤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그 다층적인 의미와 영화적 장치들을 심층적으로 탐색하고자 한다.


"하일 히틀러!"를 외치던 소년, 상상 속 '절친' 아돌프와의 위험한 동거

영화의 문을 여는 것은 열 살배기 요하네스 "조조" 베츨러(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분)의 천진난만한 열광이다. 그는 히틀러 유겐트 캠프에 참가하기 전, 자신의 방에서 상상 속 친구인 아돌프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 분)와 함께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사기를 북돋는다. 이 '상상 히틀러'는 역사 속 독재자의 냉혹함이나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조조에게 "넌 최고야, 조조! 넌 열 살짜리 나치라고!"라며 끊임없이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친구이자 때로는 토끼를 죽이지 못했다고 삐지기도 하는 어딘가 유치하고 코믹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설정은 그 자체로 나치즘의 절대적인 권위를 조롱하고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강력한 풍자 장치로 기능한다. 전쟁터에 간 아버지의 부재, 일찍 세상을 떠난 누나, 그리고 생계를 위해 바쁜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 분) 사이에서 조조는 외로움을 느끼고 히틀러 유겐트라는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며 나치즘 이념을 맹목적으로 내면화한다. 상상 히틀러는 이러한 조조의 불안감과 인정 욕구가 만들어낸 심리적 방어기제이자 동시에 그가 동경하는 '강인한 나치'의 왜곡된 이상향이 투영된 존재이다.

조조가 히틀러 유겐트 캠프에서 교관 클렌젠도르프 대위(샘 록웰 분)로부터 "토끼를 죽여라"는 명령을 받고 망설이다 결국 거부하여 '조조 래빗'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얻는 장면은 그의 내면에 잠재된 선량함과 나약함, 그리고 나치즘의 폭력성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때 상상 히틀러는 "그냥 토끼 목을 비틀어 버려!"라고 소리치며 조조를 다그치지만 조조는 차마 그러지 못한다. 이는 조조가 아직 완전한 나치로 세뇌되지 않았으며 그의 인간성이 완전히 마비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와이티티 감독은 히틀러라는 금기시된 아이콘을 직접 연기하고 희화화함으로써 파시즘의 폭력성과 맹목성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동시에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본 세상의 부조리함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이 상상 히틀러는 조조의 성장을 가로막는 내면의 장애물이자 동시에 그가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과거의 그림자인 셈이다.


벽장 속의 비밀, 유대인 소녀 엘사: "넌 나치가 아니야, 조조. 넌 그냥 꼬마야."

조조의 견고했던 나치즘 세계관에 커다란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는 바로 엄마 로지가 집 안 벽장 속에 몰래 숨겨주고 있던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 분)이다. 나치 선전물을 통해 유대인을 "뿔이 달리고 박쥐처럼 매달려 자는" 악마와 같은 존재로 학습한 조조에게 엘사의 등장은 엄청난 공포이자 극심한 혼란이다. 그는 엘사를 발견하고 처음에는 "유대인이다! 엄마한테 이를 거야!"라며 위협하지만 엄마에게 사실을 알리면 엄마 역시 위험해질 수 있다는 엘사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그녀와의 위험한 비밀 동거를 시작한다. 조조는 엘사로부터 유대인에 대한 '정보'를 캐내어 책을 쓰려 하지만 오히려 엘사의 당당하고 지혜로운 대응과 인간적인 모습에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엘사: "우린 너희랑 똑같아. 단지 인간일 뿐이야."
조조: (혼란스러워하며) "아니야, 너희는 머릿속으로 우리 마음을 읽을 수 있잖아!"

엘사는 조조가 가진 유대인에 대한 터무니없는 편견들 – 예를 들어 유대인은 알을 낳는다거나,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는 식의 – 을 하나씩 논파하며 그에게 유대인 역시 자신과 똑같은 감정과 생각을 가진 인간임을 일깨워준다. 그녀는 조조에게 "넌 나치가 아니야, 조조. 넌 그저 광신도들에게 세뇌당한 열 살짜리 꼬마일 뿐이야, 파티에 가고 싶어 하는"라고 일침을 가하며 그의 맹목적인 믿음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조조와 엘사의 관계는 처음에는 적대감과 경계심으로 시작하지만 좁은 공간 안에서 비밀을 공유하고 서로의 상처와 외로움을 엿보게 되면서 점차 특별한 유대감과 애틋한 감정으로 발전한다. 조조는 엘사를 위해 가짜 약혼자 편지를 써주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녀에게서 인간적인 연민과 호기심, 그리고 이성적인 끌림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 조조의 상상 속 히틀러는 점차 영향력을 잃어가고 엘사는 조조에게 현실 세계의 진실과 사랑의 감정을 가르쳐주는 새로운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그들의 관계는 혐오와 편견의 벽을 넘어선 인간적인 연결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피어나는 순수한 사랑과 연대의 아름다움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 엄마 로지의 춤과 빨간 구두, 절망을 이기는 삶의 찬가

조조의 엄마 로지는 이 암울하고 광적인 시대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이자 영화의 도덕적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이다. 그녀는 나치즘의 광기 속에서도 인간적인 품위와 유머 감각, 그리고 아들에 대한 깊고 헌신적인 사랑을 잃지 않는다. 그녀는 조조가 히틀러 유겐트에 열광하고 나치즘 이념에 경도되는 것을 안타까워하지만 그의 생각을 강압적으로 바꾸려 하기보다는 그의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그가 스스로 진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그녀는 조조에게 이렇게 말한다.

로지: "인생은 선물이야, 조조. 우리는 그걸 축하해야 해. 우리는 춤을 춰야 한다고 생각해."

그녀는 혐오와 폭력 대신 사랑과 관용, 그리고 자유의 가치를 아들에게 심어주려 노력한다. 그녀가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저녁 식탁에서 어릿광대처럼 콧수염을 그리고 춤을 추는 장면, 그리고 선명한 빨간 구두를 신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잊지 않으려는 그녀의 긍정적인 태도와 억압에 굴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로지는 또한 유대인 소녀 엘사를 자신의 집에 숨겨줌으로써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적인 양심과 정의를 실천하는 용감하고도 이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집은 나치즘의 폭력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보호하는 작은 안식처이자 인간애와 저항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그녀는 아들에게 직접적으로 저항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녀의 모든 행동과 삶의 태도 자체가 하나의 조용한 저항이자 희망의 메시지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이러한 로지의 따뜻함과 강인함, 그리고 생기 넘치는 유머 감각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영화에 깊은 감동과 동시에 가슴 아픈 슬픔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로지의 갑작스러운 부재, 교수대에 매달린 그녀의 빨간 구두를 발견하는 장면은 조조에게는 물론 관객에게도 엄청난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그녀가 남긴 사랑과 가르침, 그리고 그녀의 '춤추는' 자유로운 정신은 조조가 나치즘의 허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성장을 이루고 엘사와 함께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신적 유산이 된다.


전쟁의 끝, 환상의 종말, 그리고 자유를 향한 첫걸음: "망할, 히틀러!"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독일의 패망이 임박하면서 조조가 철석같이 믿었던 나치즘의 세계는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히틀러 유겐트 아이들마저 전투에 동원되어 무의미하게 죽어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조조는 전쟁의 참혹한 민낯과 나치즘의 허무한 종말을 직접 목격한다. 그가 그토록 숭배했던 히틀러와 나치즘은 결국 패배하고 그의 상상 속 친구이자 멘토였던 히틀러 역시 힘을 잃고 멍청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그의 곁에서 "망할, 히틀러!(Fuck off, Hitler!)"라는 조조의 외침과 함께 쫓겨난다. 이 장면은 조조가 마침내 유년기의 위험한 환상과 맹목적인 세뇌에서 벗어나 고통스럽지만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게 되었음을 상징하는 통쾌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순간이다. 엄마 로지의 부재와 전쟁의 깊은 상처는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슬픔을 남겼지만 동시에 그를 한 뼘 더 성장시키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서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조조는 엘사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그는 엘사에게 독일이 전쟁에서 이겼다고 거짓말을 하며 그녀를 계속 자신의 곁에 두려 했던 과거의 미성숙한 자신과 결별하고 마침내 그녀에게 진실을 말하며 함께 집 밖으로 나선다. 폐허가 된 도시의 거리에서 두 사람은 어색하지만 자유로운 춤을 춘다. 이 마지막 춤 장면은 조조가 마침내 과거의 억압과 혐오, 그리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맞이했음을 그리고 엘사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임을 상징하는 아름답고도 희망적인 순간이다. 그는 더 이상 '조조 래빗'이라는 이름에 갇힌 나약하고 세뇌된 소년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진 한 명의 독립된 인간으로 그리고 사랑과 이해, 공감의 가치를 아는 존재로 성장한 것이다.  그의 성장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성이 어떻게 회복되고 희망이 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증거이자,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함축한다.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가 흐르는 가운데, 그들의 춤은 마치 새로운 시대를 향한 자유의 몸짓처럼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조조와 엘사가 추는 춤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단순한 해방감의 표현일까, 아니면 앞으로 그들이 마주해야 할 또 다른 불확실한 현실에 대한 예고일까? 그리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 "모든 아름다운 것을 찬미하라. 그것이 너를 지켜줄지니."는 이 영화의 주제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조조 래빗'은 2차 세계대전과 나치즘이라는 인류사의 가장 어두운 비극을 다루면서도,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특유의 재기 발랄한 유머 감각과 따뜻한 인간미, 그리고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관객에게 웃음과 눈물, 그리고 깊은 성찰을 동시에 선사하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이 영화는 혐오와 편견이 어떻게 개인의 내면을 잠식하고 사회 전체를 광기로 몰아넣는지,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도 어떻게 사랑과 연대, 인간애의 빛이 피어날 수 있는지를 한 소년의 특별한 성장기를 통해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오 범죄와 극단주의, 특히 국내에서 태극기, 일장기, 이스라엘기를 동시에 흔들며 폭력적인 아스팔트 극우세력, 그리고 비뚤어진 종교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의 위험성을 생각할 때, '조조 래빗'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중요한 질문이자 경고로 다가온다. 우리는 과연 우리 안의 '상상 히틀러'로부터 자유로운가? 그리고 우리는 벽장 너머의 '엘사'에게, 혹은 우리와 다른 모든 타자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고 함께 춤을 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영화는 그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지금,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관계 속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용감하고도 지극히 사랑스러운 반전(反戰) 동화이자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주는 우리 시대의 가장 소중한 영화적 위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