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안 헤더의 연출작 'CODA(코다)'는 단순한 성장 영화를 넘어 우리의 감각과 감성을 재조정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Child of Deaf Adults'의 약자인 제목처럼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청인 자녀 루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장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소리와 침묵 사이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한 소녀의 여정을 통해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보편적 고찰을 이끌어낸다.
조용한 바다와 노래하는 영혼의 대비
영화의 시작부터 관객은 특별한 감각적 경험을 마주한다. 어부인 아버지의 배에서 루비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관객에게 소리의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그녀의 노래는 들리지만 그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의 현실도 함께 보여준다. 이러한 대비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적 장치로 소통의 여러 층위를 탐색하는 출발점이 된다.
글로스터의 어촌 마을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영화의 정서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드넓은 바다와 작은 어촌 마을은 루비 가족의 고립된 세계를 상징하면서도 그들만의 단단한 연대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바다가 품은 침묵과 루비의 노래 사이의 긴장감은 영화 전체의 미학적 기둥이 된다.
음악, 번역될 수 없는 감정의 언어
CODA에서 음악은 단순한 취미나 재능이 아니라 루비의 정체성과 해방의 매개체로 그려진다. 그녀의 노래는 두 세계 사이에서 살아가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이다. 버클리 음대 오디션 장면에서 루비가 부르는 노래는 그저 아름다운 음악적 순간을 넘어 그동안 자신의 꿈을 미루며 살아온 시간에 대한 해방감과 죄책감이 뒤섞인 복합적 감정의 표현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음악 선생님 미스터 V(유제니오 데르베즈)의 캐릭터다. 그는 단순한 멘토가 아니라 루비에게 음악의 본질이 '들리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임을 일깨우는 인물이다. "노래할 때 무엇을 느끼느냐?"라는 그의 질문은 영화의 핵심을 관통한다. 소리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진실성이 진정한 음악임을 상기시킨다.
가족의 재정의: 독립과 책임 사이에서
CODA는 성장 영화의 전형적 서사를 따르면서도 청각장애인 가족이라는 특수한 맥락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재고찰한다. 루비의 부모와 오빠로 구성된 로신스키 가족은 청각장애라는 조건 속에서도 유머와 따뜻함을 잃지 않는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이다. 특히 아버지 프랭크(트로이 코처)와 어머니 재키(말리 매틀린)는 단순한 '장애를 가진 부모'가 아닌 자식의 꿈을 응원하면서도 가족의 생존과 결속을 고민하는 입체적 인물로 그려진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루비의 코다(CODA)로서의 정체성을 복합적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가족과 사회를 연결하는 통역자로서의 책임감, 청소년기 자아 발견의 욕구,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과 죄책감 사이에서 루비의 내적 갈등은 단순한 이분법을 거부한다. '내가 없으면 가족은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사이에서 루비는 성장한다.
시선의 전환: 장애의 서사를 넘어서
CODA의 가장 혁신적인 측면은 청각장애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다. 이 영화는 청각장애인을 구원이나 연민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로신스키 가족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대응하는 강인한 개인들이다. 영화는 그들의 시점에서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정상'이라 여겨지는 청인 사회의 편견과 한계를 드러낸다.
특히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는 무음의 장면들은 관객에게 청각장애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강력한 영화적 장치다. 이는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소리 중심의 세계에서 시각과 촉각으로 소통하는 다른 방식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초대이다.
해방과 화해의 순간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루비의 버클리 음대 오디션 장면이다. 가족이 객석 뒤편에 앉아 그녀의 노래를 '보는' 순간 영화는 소리와 침묵의 경계, 분리와 연결의 이중성을 아름답게 표현한다. 아버지가 딸의 목소리를 느끼기 위해 그녀의 목에 손을 대는 장면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 서로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연결하려는 인간적 노력의 상징이 된다.
마지막으로 루비가 보스턴으로 떠나는 장면에서 부모가 수화로 "가서 노래해"라고 말하는 순간은 단순한 이별의 장면이 아니라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중하게 된 가족의 성장을 보여준다. 이는 루비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성숙과 화해를 의미한다.
결론: 소리 없는 사랑의 메아리
CODA는 소리와 침묵, 개인과 가족, 책임과 자유라는 대립적 요소들 사이의 균형을 섬세하게 탐색하는 작품이다. 시안 헤더 감독은 장애인 서사의 클리셰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청각장애인 가족의 일상을 생생하고 진실되게 그려냈다.
이 영화가 2022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단순히 다양성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선택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 경험을 새로운 시각에서 탐구한 예술적 성취에 대한 인정이다. 루비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때로는 가장 깊은 침묵 속에서 가장 진실된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역설을 품은 채 CODA는 오랫동안 관객의 마음속에 메아리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