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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2017)" - 감상평

by reward100 2025. 5. 23.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2017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Luca Guadagnino)

Call Me by Your Name, 2017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1983년 북부 이탈리아의 어느 여름, 열일곱 살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분)가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온 스물네 살의 미국인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 분)를 만나 생애 가장 강렬한 첫사랑을 경험하는 과정을 그린 눈부시게 아름답고도 가슴 시리게 아픈 성장 영화이다. 안드레 애치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한여름의 나른한 햇살과 싱그러운 과일 향, 고전 음악과 문학의 향기가 어우러진 감각적인 미장센 속에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도 본능적인 욕망, 정체성의 탐색, 그리고 사랑과 상실을 통한 성장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이 글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어떻게 첫사랑의 모든 감각과 기억을 스크린 위에 황홀하게 펼쳐 보이며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여름날의 꿈을 선사하는지 그 다층적인 매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첫 번째 떨림: 롬바르디아의 여름, 낙원에서의 만남과 미묘한 탐색전

지상낙원, 펄먼 가족의 빌라: 지적 유희와 관능적 자유가 공존하는 공간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17세기 펄먼 가족의 빌라는 단순한 공간을 넘어 지적인 자극과 예술적 영감, 그리고 관능적인 자유가 공존하는 하나의 작은 우주와 같다. 고고학 교수인 엘리오의 아버지(마이클 스털버그 분)와 번역가인 어머니(아미라 카서 분)는 아들 엘리오에게 학문적이고 예술적인 환경을 제공하며 그의 자유로운 사색과 성장을 지지한다. 빌라 주변의 과수원, 수영장, 고즈넉한 시골길, 그리고 밤마다 열리는 작은 파티들은 엘리오와 올리버의 감정이 싹트고 깊어지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이곳에서 엘리오는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치고, 작곡을 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지만 동시에 외부 세계와 새로운 경험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갈망을 느낀다.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방의 나른하고도 감각적인 여름 풍경은 영화 전체에 몽환적이고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불어넣으며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엘리오와 올리버, 두 지성의 만남: 매혹과 질투, 그리고 끌림의 시작

어느 날, 아버지의 여름 보조 연구원으로 빌라에 도착한 미국인 청년 올리버는 엘리오의 평온했던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자신감 넘치고 매력적이며 지적인 올리버는 단숨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엘리오는 그에게 강한 호기심과 함께 미묘한 질투심,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을 느낀다.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나중에!(Later!)"라는 말로 무심한 듯 거리를 두지만 그의 시선과 행동에는 엘리오를 향한 관심이 묻어난다. 두 사람은 함께 수영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고고학 유적지를 방문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서로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책이나 음악, 혹은 고대 조각상에 대한 지적인 대화를 통해 서로를 탐색하고 감정을 교류한다. 특히 바흐의 음악을 편곡하여 연주하는 엘리오와, 그 음악에 대해 토론하는 올리버의 모습은 그들의 지적인 교감과 예술적 감수성이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가 됨을 보여준다. 이 미묘한 탐색전의 과정은 첫사랑의 설렘과 불안, 그리고 상대를 향한 끝없는 호기심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두 번째 열병: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 욕망의 고백과 사랑의 확인

엘리오: "말하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죽는 게 나을까요? (Is it better to speak or to die?)"
올리버: "난 아무것도 몰라, 엘리오. 아무것도."

엘리오의 내면에서 들끓던 올리버를 향한 감정은 마침내 용기 있는 고백으로 이어진다. 제1차 세계대전 기념비 앞에서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자신의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고 올리버 역시 그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사회적 시선과 올리버의 조심스러움으로 인해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한동안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망설임의 시간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엘리오는 여자친구 마르치아(에스더 가렐 분)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시험해 보기도 하지만 올리버를 향한 마음은 더욱 깊어만 간다. 마침내 한밤중, 엘리오의 방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육체적으로도 결합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두 사람의 섬세한 감정 교류와 서로를 향한 순수한 갈망에 초점을 맞추며 아름답고도 조심스럽게 그려낸다.

특히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라는 대사는 그들의 사랑이 단순한 육체적 결합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려는 깊은 정신적 교감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상징한다. 상대방의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는 행위는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정체성을 공유하려는 사랑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이며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특별하고 절대적인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짧고도 강렬했던 사랑의 순간들은 엘리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되며 그의 삶과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복숭아를 매개로 한 장면은 이러한 젊은 날의 순수하고도 원초적인 욕망과 사랑의 기억을 감각적이고도 시적으로 응축하여 보여주는 영화의 가장 아이코닉한 장면 중 하나이다.

예술과 자연, 그리고 감각의 향연: 사랑의 배경이자 증인이 되는 모든 것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예술(음악, 문학, 조각)과 자연(햇살, 물, 과수원)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을 싹트게 하고 깊어지게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이자 증인 역할을 한다. 바흐와 라벨의 음악은 그들의 지적인 교감을 상징하고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은 시간과 변화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자극하며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상은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관능적인 욕망을 일깨운다. 여름날의 뜨거운 햇살, 시원한 강물, 탐스러운 과일들은 그들의 사랑이 가진 생명력과 감각적인 풍요로움을 시각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청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까지 전달하며 관객을 그들의 세계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이러한 예술과 자연의 요소들은 영화 전체에 시적이고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부여하며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 이야기를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선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마치 한 편의 시를 읽거나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풍부한 미적 경험을 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영화 속 어떤 예술 작품이나 자연 풍경이 가장 인상 깊었는가? 그리고 그것이 주인공들의 감정과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 번째 눈물: 짧은 여행, 필연적인 이별, 그리고 아버지의 지혜로운 위로

베르가모에서의 마지막 날들: 찬란한 슬픔과 다가오는 이별의 그림자

올리버가 미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애틋하고 절박해진다. 그들은 며칠간의 짧은 여행을 떠나 베르가모에서 마지막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그곳에서의 모든 순간에는 이미 이별의 슬픔과 그리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함께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들의 웃음 속에는 곧 닥쳐올 헤어짐에 대한 불안과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이 짧은 여행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강렬하고 소중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그 사랑이 결국 시간의 한계와 현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비극적인 예감을 안겨준다. 기차역에서의 마지막 작별 장면은 대사 한마디 없이도 두 사람의 애절한 눈빛과 망설이는 몸짓을 통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며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고통을 죽이지 마라, 슬픔도 기쁨과 함께 왔던 거니까": 아버지 펄먼 교수의 위대한 위로

올리버가 떠나간 후 깊은 슬픔에 잠긴 엘리오에게 아버지 펄먼 교수가 건네는 위로의 말은 영화의 가장 감동적이고도 지혜로운 순간이다. 그는 아들의 아픔을 꾸짖거나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지지하며 따뜻하게 포용한다. 그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음을 암시하며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특별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인한 아픔 역시 소중한 경험의 일부임을 이야기한다.

펄먼 교수: "네가 느꼈던 모든 것을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 그리고 네가 지금 느끼는 아픔까지도. 고통을 죽이지 마라, 슬픔도 기쁨과 함께 왔던 거니까. (To make yourself feel nothing so as not to feel anything—what a waste!)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 그게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알아?"

이 대사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삶의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기라는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랑의 기쁨만큼이나 이별의 아픔 역시 인간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경험이며 그 모든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러한 지혜롭고 따뜻한 위로는 엘리오에게 큰 힘이 되어주며 관객에게도 깊은 감동과 함께 자신의 과거 경험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는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랑과 지지의 한 형태를 보여주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마지막 불꽃: 겨울, 한 통의 전화, 그리고 영원히 타오를 여름의 기억

시간이 흘러 겨울이 찾아오고 엘리오는 올리버로부터 약혼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는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올리버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었음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엘리오는 담담하게 축하의 말을 건네지만 전화를 끊은 후 벽난로 앞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의 얼굴 위로 타오르는 불꽃은 그해 여름의 뜨거웠던 사랑의 기억과 현재 그가 느끼는 깊은 슬픔, 그리고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있는 올리버에 대한 그리움을 동시에 비추는 듯하다.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의 애절한 노래 'Visions of Gideon'이 흐르는 가운데 엘리오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복잡한 감정들은 대사 한마디 없이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마지막 장면은 첫사랑의 강렬했던 기억과 그로 인한 아픔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오랫동안 깊은 흔적을 남기는지를 보여준다. 엘리오는 올리버와의 사랑을 통해 성장했지만 동시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은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만이 아니라 그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깊이 있게 만드는 소중한 경험의 일부이기도 하다. 영화는 해피엔딩도, 완전한 비극도 아닌, 삶의 복잡성과 아이러니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열린 결말을 통해 사랑과 상실의 경험이 어떻게 우리를 성장시키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게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남긴다. 그해 여름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엘리오의 마음속에서, 그리고 영화를 본 관객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타오를 것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단순한 퀴어 영화나 성장 영화의 범주를 넘어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고도 근원적인 감정인 사랑과 상실, 그리고 기억의 문제를 아름답고도 시적인 언어로 탐구한 예술 작품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티모시 샬라메, 아미 해머, 마이클 스털버그 등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이탈리아 여름의 감각적인 풍경과 아름다운 음악은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황홀한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삶에도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라고 속삭였던, 혹은 속삭이고 싶었던 특별한 여름이 있었는가? 그리고 그 여름의 기억은 지금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 자체가 바로 삶이라는 이름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임을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순간들이 우리를 더욱 깊이 있는 존재로 만들어간다는 것을 따뜻하게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