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타르(TAR, 2022) - 권력과 예술의 경계에서 길을 잃다

by reward100 2025. 5. 25.

 

TAR 타르

Tár (2022)

감독: 토드 필드 | 주연: 케이트 블란쳇

 

Tár (2022)

서론: 정교하게 조율된 몰락의 서곡

토드 필드 감독이 16년 만에 선보인 영화 'TAR 타르'는 현대 클래식 음악계의 정점에 선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의 복잡다단한 내면과 그녀를 둘러싼 논란, 그리고 서서히 진행되는 몰락을 치밀하고도 냉정한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케이트 블란쳇의 압도적인 연기력은 허구의 인물인 리디아 타르를 마치 실존 인물처럼 생생하게 스크린에 구현해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천재성과 그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그림자를 동시에 목도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단순한 인물 드라마를 넘어 예술과 권력, 천재성과 도덕성, 그리고 현대 사회의 캔슬 컬처(Cancel Culture)와 정체성 정치 등 첨예한 이슈들을 건드리며 깊은 성찰과 논쟁을 유도한다. 마치 한 편의 장대한 교향곡처럼 영화는 도입부의 화려함과 점차 고조되는 긴장감, 그리고 파국으로 치닫는 클라이맥스를 거쳐 관객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된다. 본 감상평에서는 리디아 타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영화의 주요 서사와 테마,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다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서사 구조와 갈등의 전개: 완벽을 향한 집착과 균열의 시작

영화는 리디아 타르가 뉴요커 페스티벌에서 저명한 작가와 대담을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은 그녀가 이룬 업적, 지적인 매력, 그리고 음악계에서의 독보적인 위치를 효과적으로 제시하며 관객에게 그녀의 '완벽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상임 지휘자이자 EGOT(에미상, 그래미상, 오스카상, 토니상) 수상자라는 설정은 그녀가 가진 권위와 영향력을 가늠하게 한다. 이후 영화는 그녀가 말러 교향곡 5번 녹음을 준비하는 과정과 줄리아드 음대에서의 강의, 그리고 그녀의 일상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세밀하게 따라간다. 이 과정에서 그녀의 예민하고 통제적인 성격, 예술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서의 문제점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특히 과거 그녀와 관계가 있었던 젊은 여성 지휘자 크리스타 테일러의 자살 소식과 그와 관련된 익명의 고발 이메일은 리디아 타르의 견고했던 세계에 균열을 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영화는 이 사건의 진실을 명확하게 규명하기보다는 의혹과 소문, 그리고 리디아 타르가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과 편집증적인 증상들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녀는 자신의 명성과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과거의 흔적을 지우려 하고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며 더욱 신경질적으로 변해간다. 아내이자 악장인 샤론(니나 호스 분)과의 관계는 냉각되고 입양한 딸 페트라와의 유대감만이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불안은 점차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고 이상한 소리나 환영에 시달리는 등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 줄리아드 강의 중 성소수자 학생을 다소 강압적으로 몰아붙였던 장면이 편집되어 온라인에 유포되고 과거의 제자였던 올가(소피 카우어 분)에게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모습 등은 그녀를 둘러싼 논란을 더욱 증폭시킨다. 결국, 크리스타 테일러와의 관계에 대한 추가적인 폭로와 시위로 인해 그녀는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모든 것을 잃은 채 쓸쓸히 퇴장하는 듯 보인다. 영화의 결말은 동남아시아의 한 소규모 오케스트라에서 비디오 게임 '몬스터 헌터'의 음악을 지휘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며 충격과 함께 복합적인 감정을 안긴다. 이는 그녀의 완전한 몰락일 수도 혹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암시일 수도 있는 열린 결말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주요 테마 탐구: 예술, 권력, 그리고 정체성의 미로

권력의 속성과 그 남용의 위험성

'TAR 타르'는 권력이 한 개인에게 집중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과 그 위험성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리디아 타르는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이용하여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때로는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가 젊은 여성 음악가들에게 일종의 '멘토십'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권력 관계와 감정적 착취의 가능성은 영화 내내 긴장감을 유발한다. 크리스타 테일러의 비극적인 선택은 이러한 권력 남용의 잠재적인 결과에 대한 경고처럼 다가온다. 영화는 리디아 타르를 일방적인 가해자로 단정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사용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관객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예술가의 천재성과 도덕적 책임 사이의 간극

영화는 위대한 예술가의 업적과 그의 사적인 도덕성 문제를 분리해서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진다. 리디아 타르는 의심할 여지 없이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깊이 있는 해석 능력을 지닌 거장이다. 그녀는 음악, 특히 말러의 교향곡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며 지휘봉을 잡았을 때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녀의 사생활과 관련된 논란들은 그녀의 예술적 성취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줄리아드 강의 장면에서 그녀는 바흐의 사생활과 그의 음악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러한 분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다. 영화는 천재적인 예술가라 할지라도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기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시사하며 예술과 도덕성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캔슬 컬처와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적 시선

영화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이슈인 캔슬 컬처와 정체성 정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리디아 타르가 몰락하는 과정은 익명의 고발, 편집된 영상의 유포, 그리고 여론 재판과 같은 캔슬 컬처의 양상과 맞닿아 있다. 물론 그녀의 행동에 문제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기 전에 한 개인의 삶이 파괴되는 과정은 씁쓸함을 남긴다. 또한, 줄리아드 강의 장면에서 성소수자 학생과의 논쟁은 정체성 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학생은 작곡가의 정체성(성별, 인종 등)을 이유로 그의 음악을 거부하려 하고 리디아 타르는 예술 자체의 가치를 옹호하며 이에 반박한다. 이 장면은 예술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과 정체성 정치의 관계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이러한 현상들을 다루면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보다는 복잡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인물 분석: 리디아 타르라는 수수께끼

케이트 블란쳇은 리디아 타르라는 허구의 인물에게 엄청난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그녀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내면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그녀가 연기한 리디아 타르는 지적이고 매력적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이면서 동시에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때로는 타인에게 냉담하고 오만한 인물이다. 그녀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으로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압박하며 자신의 성공을 위해 계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그녀의 성공 신화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약점과 불안, 그리고 고독감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특히 그녀가 편집증적인 증상에 시달리며 점차 무너져 내리는 과정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리디아 타르는 선과 악으로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매우 입체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시대의 흐름 속에서 희생된 것인지, 영화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음악은 시간을 조각하는 예술이다." 

 

리디아 타르는 음악, 특히 시간의 흐름을 제어하고 해석하는 지휘자의 역할에 대해 깊은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녀에게 음악은 단순한 소리의 나열이 아니라 감정과 사상을 담아내는 정교한 건축물과도 같다. 이러한 그녀의 예술관은 그녀가 자신의 삶과 커리어를 통제하려는 강한 욕망과도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인다.

연출 및 미장센: 냉정하고 절제된 시선의 미학

토드 필드 감독은 'TAR 타르'에서 절제되고 냉정한 연출 스타일을 선보인다. 카메라는 종종 리디아 타르를 객관적인 거리에서 관찰하는 듯한 시점을 유지하며 그녀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미묘한 표정 변화나 행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은 차갑고 건조하며 현대적이고 세련된 미장센은 리디아 타르의 성공적인 삶과 그녀가 속한 클래식 음악계의 엘리트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영화 초반부의 롱테이크 장면들과 정적인 구도는 관객으로 하여금 리디아 타르의 세계에 몰입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그녀의 삶에 내재된 불안과 긴장감을 암시한다. 음향 디자인 또한 영화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리디아 타르가 듣는 미스터리한 소리들, 그리고 그녀를 괴롭히는 소음들은 그녀의 심리적 혼란을 청각적으로 시각화하며 서스펜스를 고조시킨다. 말러 교향곡 5번을 비롯한 클래식 음악들은 영화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리디아 타르의 감정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결론: 당신의 해석은 무엇인가?

'TAR 타르'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관객에게 능동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영화다. 리디아 타르의 몰락은 개인의 오만과 과오 때문인가, 아니면 변화하는 시대의 가치관과 충돌한 결과인가? 천재적인 예술가의 사생활은 그의 작품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 영화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다양한 논쟁의 지점들을 열어두고 관객 각자의 판단과 성찰을 유도한다. 케이트 블란쳇의 경이로운 연기와 토드 필드 감독의 섬세하고 지적인 연출은 'TAR 타르'를 최근 몇 년간 가장 문제적이고도 매혹적인 작품 중 하나로 만들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리디아 타르라는 인물과 그녀를 둘러싼 논쟁들은 쉽게 뇌리를 떠나지 않으며 우리 시대의 예술과 권력, 그리고 윤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단순한 감상을 넘어 적극적인 토론과 사유를 즐기는 관객에게 특히 의미 있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