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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스토리': 시간의 잔해 속, 사랑과 상실의 영원한 속삭임 서론: 하얀 천 아래의 유령, 침묵으로 말하는 존재의 무게와 시간의 영속성데이비드 로워리 (David Lowery) 감독의 '고스트 스토리 (A Ghost Story, 2017)'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공포 영화 속 유령의 이미지를 전복시키고 극도로 미니멀하고도 시적인 방식으로 시간, 사랑, 상실, 그리고 존재의 영속성이라는 거대하고도 근원적인 주제를 탐구하는 독창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젊은 부부 C (케이시 애플렉, Casey Affleck 분)와 M (루니 마라, Rooney Mara 분)이 함께 살던 교외의 작은 집을 배경으로 C가 갑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후 하얀 천을 뒤집어쓴 유령이 되어 홀로 남겨진 M의 곁을 맴돌고 그녀가 떠나간 후에도 그 집에 남아 영겁의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 2025. 5. 13.
'더 그레이트 뷰티': 로마의 황홀경, 공허한 아름다움의 만찬 서론: 영원한 도시 로마, 그 속의 권태로운 관찰자 젭 감바르델라파올로 소렌티노 (Paolo Sorrentino) 감독의 '더 그레이트 뷰티 (La grande bellezza / The Great Beauty, 2013)'는 영원한 도시 로마의 눈부신 아름다움과 그 이면에 숨겨진 깊은 공허, 그리고 그 속을 유영하는 한 중년 남성의 내면 풍경을 현란하고도 시적인 영상 언어로 담아낸 현대 이탈리아 영화의 걸작이다. 영화는 65세 생일을 맞이한 저널리스트이자 사교계의 명사 젭 감바르델라 (토니 세르빌로, Toni Servillo 분)의 시선을 따라 로마의 화려한 파티와 예술계의 허영, 종교의 위선, 그리고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권태가 뒤섞인 그의 일상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페데리코 펠리니(Feder.. 2025. 5. 13.
'세인트 빈센트': 괴팍한 성자, 예기치 않은 우정 속의 구원 서론: 문제투성이 이웃 할아버지, 성자(Saint)의 재발견과 인간적인 연대의 온기데오도르 멜피 (Theodore Melfi) 감독의 '세인트 빈센트 (St. Vincent, 2014)'는 겉으로는 괴팍하고 냉소적이며 온갖 문제에 휩싸여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웃집 할아버지 빈센트 매케나 (빌 머레이, Bill Murray 분)와 부모의 이혼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소심한 소년 올리버 (제이든 리버허, Jaeden Martell 분) 사이에 예기치 않게 싹트는 특별한 우정과 그를 통해 서로가 성장하고 구원받는 과정을 그린 따뜻하고 유쾌한 코미디 드라마이다. 영화는 빈센트라는 인물이 가진 반사회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모습 뒤에 숨겨진 깊은 상처와 인간적인 면모를 점차 드러내면서 우리가 타인을 얼마나 .. 2025. 5. 12.
'패터슨': 일상의 운율, 시가 되는 삶 서론: 반복되는 일주일, 그 안에 숨겨진 시적 순간들짐 자무쉬 (Jim Jarmusch) 감독의 '패터슨 (Paterson, 2016)'은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갈등 없이 뉴저지 주 패터슨 시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애덤 드라이버, Adam Driver 분)의 반복되는 일주일을 잔잔하고도 시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영화이다.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 Golshifteh Farahani 분)에게 입맞춤하고, 시리얼을 먹고, 버스를 운전하며 승객들의 대화를 엿듣고, 점심시간에는 폭포 옆 벤치에 앉아 비밀 노트에 시를 쓰고, 퇴근 후에는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 마빈과 함께 산책을 하며 단골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을 마시는 패터슨의 일상은 단조롭고 평범해 보인다. .. 2025. 5. 12.
'송곳니': 뒤틀린 유토피아, 가족이라는 이름의 감옥 서론: 외부와 단절된 집, 그 안의 기괴한 질서와 억압된 욕망요르고스 란티모스 (Yorgos Lanthimos) 감독의 '송곳니 (Kynodontas / Dogtooth, 2009)'는 그리스 뉴웨이브의 등장을 알린 충격적이고도 독창적인 작품으로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채 집 안에서만 살아가는 한 가족의 기괴하고도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공장 사장인 아버지(크리스토스 스텔르기오글루, Christos Stergioglou)는 아내(미셸 발리, Michele Valley)와 함께 세 명의 성인 자녀 – 큰딸(아게리키 파루리아, Aggeliki Papoulia), 작은딸(마리 초니, Mary Tsoni), 그리고 아들(크리스토스 파살리스, Christos Passalis) – 를 높은 담장 안의 집에 .. 2025. 5. 11.
'더 스퀘어': 위선적인 광장, 현대 예술과 인간 본성의 민낯 서론: 예술이라는 이름의 광장, 그 안의 불편한 진실들루벤 외스틀룬드 (Ruben Östlund) 감독의 '더 스퀘어 (The Square, 2017)'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작품으로 현대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안 (클라에스 방, Claes Bang 분)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와 예술계의 위선, 도덕적 딜레마, 그리고 인간 본성의 이기적인 단면들을 날카롭고도 불편한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파헤친다. 영화는 '더 스퀘어'라는 새로운 전시 – "광장은 신뢰와 배려의 성역이다. 그 안에서는 우리 모두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 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크리스티안이 겪게 되는 일련의 황당하고도 곤혹스러운 사건들을 통해 그가 옹호하는 이상적인 가치와 실제 그의 행동, 그리고 그가 속한 세계의 .. 2025.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