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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트럭 위의 열정, 관계의 재발견: '아메리칸 셰프' 서론: 좌절한 셰프의 로드 트립, 맛과 행복을 찾아서존 패브로 (Jon Favreau) 감독이 각본, 연출, 주연까지 맡은 '아메리칸 셰프 (Chef, 2014)'는 언뜻 보기에 맛있는 음식과 신나는 음악, 그리고 따뜻한 가족애가 버무려진 유쾌하고 기분 좋은 코미디 드라마처럼 보인다. LA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실력파 셰프 칼 캐스퍼(존 패브로 분)가 레스토랑 오너(더스틴 호프먼, Dustin Hoffman 분)와의 창의성 갈등과 유명 음식 평론가(올리버 플랫, Oliver Platt 분)와의 트위터 설전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후, 전 부인 이네즈(소피아 베르가라, Sofía Vergara 분)의 도움과 아들 퍼시(엠제이 앤서니, Emjay Anthony 분), 동료 마틴.. 2025. 5. 5.
진품과 복제품, 관계의 진실 게임: '사랑을 카피하다' 서론: 투스카니의 하루, 진짜 같은 가짜 혹은 가짜 같은 진짜압바스 키아로스타미 (Abbas Kiarostami) 감독의 '사랑을 카피하다 (Certified Copy / Copie conforme, 2010)'는 이탈리아 투스카니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두 남녀의 하루 동안의 만남을 통해 진품과 복제품, 원본과 카피, 현실과 허구, 그리고 사랑과 관계의 본질에 대한 지적이고도 매혹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영화는 '복제품도 진품만큼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 '공인된 복제품(Certified Copy)'을 출간한 영국 작가 제임스 밀러 (윌리엄 쉬멜, William Shimell 분)와 그의 강연회에 참석한 프랑스 출신 골동품상 여성 엘르 (줄리엣 비노쉬, Juliette Binoch.. 2025. 5. 4.
기억의 파편, 시적 자아의 투영: '거울' 서론: 서사를 해체한 기억의 몽타주, 무의식의 흐름 속으로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Andrei Tarkovsky) 감독의 '거울 (Zerkalo / Mirror, 1975)'은 전통적인 영화 문법과 서사 구조를 과감히 해체하고 오직 기억과 꿈, 시적인 이미지와 내레이션의 파편적인 흐름을 통해 한 개인의 내면 풍경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지극히 실험적이고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영화는 명확한 주인공이나 줄거리를 제시하는 대신 죽음을 앞둔 것으로 암시되는 화자 알렉세이(목소리 출연: 인노켄티 스목투놉스키, Innokenty Smoktunovsky)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의 유년 시절 기억, 어머니 마리아/나탈리아(마르가리타 테레호바, Margarita Terekhova 분)에 대한 애틋하고 복합적인 감정.. 2025. 5. 4.
시간의 강, 기억의 조각, 삶의 마지막 시어(詩語): '영원과 하루' 서론: 죽음을 앞둔 시인의 마지막 하루, 시간과 기억 속으로의 여행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테오 앙겔로풀로스 (Theo Angelopoulos) 감독의 '영원과 하루 (Eternity and a Day / Mia aioniotita kai mia mera, 1998)'는 삶의 마지막을 앞둔 한 노시인의 하루를 통해 시간, 기억, 언어, 역사, 그리고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깊고도 시적인 언어로 탐구하는 명상적인 걸작이다. 그리스의 저명한 시인 알렉산더 (브루노 간츠, Bruno Ganz 분)는 심각한 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병원 입원을 하루 남겨둔 채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의 순간들과 마주한다. 그는 우연히 만난 어린 알바니아 난민 소년 (아킬레스 스케비스, Achileas Sk.. 2025. 5. 3.
도시의 황열병, 고독한 영혼의 분열: '택시 드라이버' 서론: 밤의 택시, 도시의 심연을 응시하는 고독한 눈마틴 스코세이지 (Martin Scorsese)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 1976)'는 단순히 한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를 넘어 1970년대 미국 사회의 병리 현상, 현대 도시 문명이 야기하는 인간 소외와 정신적 황폐화, 그리고 폭력의 근원에 대한 가장 강렬하고도 불편한 초상화이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 출신의 트래비스 비클 (로버트 드 니로, Robert De Niro 분)은 극심한 불면증으로 인해 밤 시간 동안 택시 운전사로 일하며 뉴욕의 어둡고 축축한 뒷골목을 배회한다. 그의 시선을 통해 비치는 도시는 온갖 쓰레기와 오물, 범죄와 매춘, 타락과 부패로 들끓는 지옥과 같다. 이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트래비스는 극심한 고독감과 소.. 2025. 5. 3.
감시의 시선, 외면된 죄책감의 귀환: '히든' 서론: 평온한 일상에 던져진 비디오테이프, 불안의 시작미카엘 하네케 (Michael Haneke) 감독의 '히든 (Caché / Hidden, 2005)'은 표면적으로는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감시당하는 중산층 가정의 불안을 그린 심리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적 죄책감과 역사적 트라우마, 계급 문제, 그리고 미디어와 이미지의 본질에 대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질문을 담고 있는 지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파리의 한 아파트에 사는 문학 프로그램 진행자 조르주 로랑 (다니엘 오퇴유, Daniel Auteuil 분)과 그의 아내 안 (줄리엣 비노쉬, Juliette Binoche 분), 그리고 아들 피에로 (레스터 마케돈스키, Lester Makedonsky 분)에게 어느 날부터 그들의 집 외관을 몇 시간.. 2025.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