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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없다(2016) - 침묵의 무게, 진실의 대가 여성 서사의 힘 - 연홍, 미스터리의 중심에 서다영화 (이경미 감독 2016년)은 겉으로는 딸의 실종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깊은 곳에는 여성 서사의 힘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비판 진실과 거짓의 격렬한 충돌 그리고 정치와 가족 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는 여성 주인공 연홍(손예진 분)이 이야기의 중심축을 담당한다는 점이다. 연홍은 단순히 실종된 딸의 어머니라는 수동적인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딸의 행방을 쫓아 직접 진실을 파헤치는 능동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이는 남성 중심적인 기존 스릴러 영화에서 주로 남성 탐정이나 경찰이 수행했던 역할을 여성이 대신하는 것으로 한국 영화계에서 주변부로 여겨졌던 여성의 목소리를 전면에 부각시킨다.영화는.. 2025. 3. 7.
영화 '가버나움'과 나딘 라바키가 펼치는 현실의 시 카메라가 포착한 살아있는 상처들레바논 출신 여성 감독 나딘 라바키의 '가버나움(Capernaum)'은 단순한 영화 이상의 존재감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혼돈'이라는 뜻을 지닌 제목처럼 이 작품은 베이루트 빈민가의 혼란스러운 현실을 여과 없이 담아내며 시작한다. 그러나 이 혼돈 속에서 라바키 감독은 놀라운 시적 질서를 창조해낸다. 카메라는 12살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가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는 이야기를 비선형적 구조로 풀어낸다.특히 라바키 감독의 다큐멘터리적 연출은 영화의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비전문 배우들과 실제 난민들을 출연시키고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된 흔들리는 화면은 마치 우리가 자인의 일상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단순한 .. 2025. 3. 6.
안다둔(Andhadhun, 2018) 인도 영화 '안다둔(Andhadhun)'은 볼리우드 영화 산업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다. 감독 스리람 라그반(Sriram Raghavan)의 이 작품은 기존 인도 영화가 가지고 있던 모든 전형성을 타파하고 전 세계 관객들에게 인도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흔히 볼리우드 영화라고 하면 3시간에 가까운 상영 시간,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화려한 댄스 장면, 멜로드라마적 요소의 과잉, 그리고 예측 가능한 해피엔딩 등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안다둔'은 이런 전형적인 인도 영화의 공식과 차별화하여 블랙 코미디와 스릴러, 그리고 범죄 영화의 요소를 절묘하게 조합해낸 수작이다.시각적 맹점을 이용한 이야기의 전개'안다둔'은 '맹목적(Blind Tune)'이라는 제목처럼 시각적 맹점에 관한 이야기다. 주.. 2025. 3. 6.
스페니시 어페어 (Ocho Apellidos Vascos, 2014) - 웃음의 지중해 줄거리: 태양과 바람이 빚어낸 사랑 찾아 삼만리 코미디 오디세이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안달루시아의 뜨거운 햇살이 스크린을 뚫고 쏟아지는 듯했다. 세비야의 남자 라파(다니 로비라), 그는 마치 태양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사람처럼 밝고 능글맞고 거침없다. 그의 삶은 플라멩코 기타 소리처럼 자유분방하고 농담은 안달루시아의 햇살처럼 따뜻하다. 반면, 아마이아(클라라 라고)는 빗방울 흩날리는 바스크 해안처럼 차갑고 도도하다. 그녀의 눈빛은 짙은 안개처럼 신비롭고 말 한마디는 칼날처럼 날카롭다. 세비야의 독신 파티에서 운명처럼 두 사람은 만나지만 아마이아는 라파의 유혹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갑 하나 잃어버린 것을 빌미로 라파는 마치 돈키호테처럼 황당무계한 여정을 떠난다. 그의 목적지는 스페인의 북쪽 끝 안개 자욱한.. 2025. 3. 6.
킹스 스피치 (2010) - 말을 잃은 시대, 언어를 찾은 왕 침묵의 무게, 드라마의 서막영화 '킹스 스피치'를 스크린으로 마주하는 순간,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흑백톤의 화면은 시대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아낸 듯했고, 콜린 퍼스의 섬세한 떨림은 곧 시작될 드라마의 서막을 알리는 듯했다. 나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한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고통과 희망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내 마음속에는 웅변보다 더 강력한, 침묵 속에서 빚어진 인간 승리의 감동만이 묵직하게 남았다.왕실 이야기, 운명과 고뇌, 짊어진 무게'킹스 스피치'는 단순한 왕실 이야기가 아니다. 말더듬이라는 핸디캡을 가진 버티(훗날의 조지 6세)가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로구를 만나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깨닫고, 나아가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웅.. 2025. 3. 6.
'퍼펙트 스트레인져' (Perfetti Sconosciuti, 2016) 손 안의 블랙 미러, 혹은 욕망의 돋보기 –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관계의 진실어둠이 짙게 드리운 밤, 텅 빈 캔버스 같은 식탁 위에 일곱 개의 빛나는 핸드폰이 놓인다.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져'는 바로 이 섬뜩한 아름다움에서 시작한다. 스마트폰, 현대인의 분신이자 디지털 감옥. 우리는 그 작은 기계 속에 삶의 희로애락을 압축하고, 때로는 진실을 은폐하며, 때로는 거짓으로 포장한다. 영화는 마치 날카로운 메스로 현대인의 소통 방식과 관계의 이면을 해부하는 듯하다. 저녁 식사라는 일상적인 배경은 순식간에 아슬아슬한 심리 게임의 무대로 돌변하고, ‘핸드폰 잠금 해제 게임’이라는 발칙한 제안은 봉인되었던 욕망과 비밀을 터져 나오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 그날 밤, 핸드폰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관계의 균열을 적.. 2025.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