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97 "덩케르크": 시간을 조각하고 감각을 침범하다 서사 대신 감각: 전쟁의 피부적 체험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2017년 작 는 전쟁 영화의 외피를 썼지만 그 내부는 전통적인 서사와는 완전히 다른 물질로 채워져 있다. 이 영화는 영웅담이나 반전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설파하지 않는다. 대신, 1940년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간의 감각적 경험 자체를 스크린 위에 조각한다. 놀란은 관객을 안전한 관찰자의 자리에 앉히는 대신 해변의 모래바람, 전투기의 굉음,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무자비하게 끌어당긴다.영화는 의도적으로 인물들의 배경 설명이나 심리 묘사를 최소화한다. 토미(Fionn Whitehead)라는 이름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젊은 병사는 특정한 개인이기보다 생존이라는 원초적 본능만이 남.. 2025. 4. 17.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 폐허 속 거울, 유인원의 눈에 비친 인간의 민낯 문명의 여명인가, 어둠의 서곡인가맷 리브스(Matt Reeves) 감독의 2014년 작은 단순한 SF 액션 블록버스터의 외피를 넘어선다. 시미안 플루로 인류 문명이 붕괴한 지 10년, 영화는 인간의 그림자가 걷힌 자리에 움튼 유인원들의 세계를 비춘다. 그러나 이 '반격의 서막'은 유인원 문명의 여명만을 그리지 않는다. 그것은 폐허 위에 선 인간과 유인원이라는 두 종족이 서로를 비추는 일그러진 거울과 같다. 특히 이 영화는 유인원들의 눈, 그중에서도 코바(Toby Kebbell)의 상처 입은 눈동자를 통해 인간성이란 무엇이며 그 어두운 그림자가 어떻게 종족을 넘어 전염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탐문한다.시저(Andy Serkis)가 이끄는 유인원 공동체는 나름의 질서와 언어 그리고 윤리를 구축했다. '유인원.. 2025. 4. 16. 얼어붙은 땅, 꺼지지 않는 불씨: "하얼빈"의 내적 풍경화 1. 기념비 너머의 풍경: 의 질문2024년 12월 24일, 시대의 부름처럼 은 마침내 관객 앞에 섰다. 우민호 감독(Woo Min-ho)은 300억 원이라는 육중한 예산과 안중근이라는 역사적 무게감을 짊어지고, 익숙한 영웅 서사의 안온함을 거부한다. 영화는 하얼빈의 얼어붙은 대지를 단순한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시대의 빙하기와 그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기념비 속 위인이 아니라 혹한 속에서 자신의 길을 피로 새겨나가는 한 인간, 안중근(현빈, Hyun Bin)의 흔들리는 뒷모습이다.은 안중근이라는 이름을 신화의 제단에서 끌어내려 우리와 같은 지평에 세운다. 역사적 사실의 연대기적 나열 대신 영화는 그 사건들 이면에 숨겨진.. 2025. 4. 16. "브루클린(Brooklyn)": 심장의 지리학, 두 세계 사이의 조용한 항해 존 크롤리(John Crowley) 감독의 2015년 작은 은 단순히 1950년대 아일랜드 처녀의 이민 성공담이나 달콤한 로맨스 서사로 축약되기에는 너무나 섬세하고 복합적인 결을 지닌 작품이다. 콜럼 토빈(Colm Tóibín)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닉 혼비(Nick Hornby)가 각색한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한 젊은 여성의 성장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고향'이라는 개념의 재정의, 정체성의 유동성,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머무는 곳'에 대한 깊은 성찰, 즉 '심장의 지리학'을 그리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두 개의 대륙, 두 개의 삶, 두 개의 자아 사이에서 길을 찾아 나서는 한 영혼의 조용하지만 강렬한 내면의 항해로 읽어내고자 한다.에이리스의 첫 번째 세계: 익숙함과의 고통스러운 결별.. 2025. 4. 15. 침묵의 파수꾼: "스포트라이트(Spotlight)" 뉴스룸의 불빛이 모든 것을 비추는 것은 아니다. 그 불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는 사회가 묵인한 어둠이 존재한다. 토마스 맥카시(Thomas McCarthy) 감독의 '스포트라이트'는 단순한 저널리즘 영화를 넘어 우리 사회의 '침묵의 메커니즘'을 해부한 사회학적 연구서이다.빛과 어둠의 변증법: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한 사회의 진실은 표면에 드러난 것이 아니라 그 아래 숨겨진 침묵의 시스템에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제목 그대로 특정 지점에 빛을 비추는 행위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 주변의 광범위한 어둠을 드러낸다.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팀이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 성폭력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은 단순한 범죄 폭로가 아니라 보스턴이라는 도시 전체가 어떻게 침묵의 공모자가 되었는지를 폭로하는 과정이다.영.. 2025. 4. 15. 통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실존적 미로: '큐브(Cube)' 감독: 빈센조 나탈리(Vincenzo Natali) | 1997년 | 캐나다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빈센조 나탈리의 데뷔작 '큐브(Cube)'에서 신은 단순한 주사위가 아닌 27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입방체로 인간의 운명을 가지고 놀이를 한다. 저예산 독립 영화로 시작해 컬트적 명성을 얻은 이 작품은 단순히 공포와 스릴만을 추구하는 서바이벌 영화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사회 구조에 대한 기하학적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기하학적 공포: 유클리드 대 비유클리드적 실존큐브라는 공간은 동일한 형태를 반복하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형화된 세계다. 그러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경험은 철저히 비유클리드적이다. 일반적인 공포 영화가 괴물이나 살인마를 통해 공포를 형상화한다면 .. 2025. 4. 14. 이전 1 ··· 14 15 16 17 18 19 20 ··· 3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