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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Risen)": 로마 호민관의 수사 보고서, 혹은 증거 너머의 진실 예루살렘의 미스터리: 사라진 시체와 흔들리는 제국케빈 레이놀즈(Kevin Reynolds) 감독의 2016년 "부활"은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매우 독특한 시각에서 접근한다. 영화는 신앙인의 경건한 시선이나 성서의 기록을 그대로 따라가는 대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지 않는 로마군 호민관(Tribune) 클라비우스 (Clavius)(Joseph Fiennes 분)의 눈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는 일종의 역사 추리극 형식을 취한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후 사흘 만에 그의 시체가 무덤에서 사라지고 그가 부활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유대 지도자들과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Pontius Pilate)(Peter Firth 분)는 민란을 우려한다. 빌라도는 유능하고 냉철한 군인 .. 2025. 4. 20.
"더 포스트": 종이와 잉크, 활자와 인쇄기 - 진실의 물질성에 관한 연대기 펜타곤 페이퍼스, 만질 수 있는 진실의 무게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2017년 작은 1971년 미국을 배경으로 베트남 전쟁의 추악한 진실을 담은 국방부 기밀문서, 일명 '펜타곤 페이퍼스'의 폭로 과정을 긴박하게 그린다.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 '케이' 그레이엄(Meryl Streep)과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Tom Hanks)는 뉴욕 타임스가 정부의 압력으로 보도를 중단당한 후 이 위험천만한 문서를 손에 넣고 보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인다. 이 영화는 흔히 언론 자유의 중요성이나 여성 리더십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해석된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다른 각도, 즉 '진실의 물질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는 추상적인 '진실'이나 '자유'가.. 2025. 4. 19.
"나이브스 아웃": 트롬비 저택이라는 미궁, 혹은 진실의 건축학 고색창연한 무대, 뒤틀린 욕망의 집합체라이언 존슨(Rian Johnson) 감독의 2019년 작은 애거서 크리스티 스타일의 고전 추리극을 현대적으로 비틀어낸 영리한 오락 영화다. 베스트셀러 추리 소설가 할런 트롬비(Christopher Plummer)가 85세 생일 파티 다음 날 아침 자신의 서재에서 목이 그인 시체로 발견된다. 명백한 자살처럼 보이는 사건 현장에 익명의 의뢰를 받은 남부 억양의 사립 탐정 브누아 블랑(Daniel Craig)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미스터리의 궤도로 진입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블랑이나 용의자인 가족들만이 아니다. 바로 트롬비 가문의 저택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궁이자 숨겨진 진실을 품고 있는 중요한 캐릭터로 기능한다.기묘한 장식품, 비밀 통로.. 2025. 4. 19.
"펄프 픽션": 일상의 파편 속에 숨겨진 구원과 농담 - 타란티노의 만화경 시간을 뒤섞고 장르를 조롱하다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1994년 작은 영화사의 시간을 단숨에 뒤흔들어 놓았다. 은 연대기적 서사를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뒤섞어 놓은 비선형적 구조를 통해 관객에게 익숙한 플롯 감각을 완전히 배반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시작과 끝이 모호하게 연결되고 죽었던 인물이 다음 장면에 멀쩡히 등장하는 이 독특한 방식은 단순한 기교가 아니다. 이것은 삶의 우연성, 예측 불가능성, 그리고 파편화된 현대인의 경험을 반영하는 타란티노식 세계관의 표현이다. 영화는 갱스터, 복서, 청부살인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장르의 관습을 따르기보다 조롱하고 비틀며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다.이 영화의 진정한 독창성은 그러나, 파격적인 구조나 스타일리시한 폭력.. 2025. 4. 18.
"칠드런 오브 맨": 불임의 시대, 희망이라는 이단적 생명력 종말의 풍경, 무뎌진 감각의 세계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 감독의 2006년 작은 단순한 디스토피아 SF를 넘어선다. 2027년 영국, 마지막 아기가 태어난 지 18년이 흐른 세계. 인류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충격적이다. 세계 최연소 인간(18세)의 사망 소식을 카페 TV로 접한 사람들의 무덤덤한 표정, 그리고 이어진 갑작스러운 폭탄 테러. 이 장면은 의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죽음은 일상이 되었고 희망은 풍문처럼 사라졌으며 사람들은 미래 없는 현실에 무감각하게 적응했다. 쿠아론 감독은 이 '불임(infertility)'을 단지 생물학적 현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것은 희망의 부재, 의미의 상실, 공감의 불능, 미래를 상상할 능력의.. 2025. 4. 18.
"쓰리 빌보드": 상처 입은 자들의 위태로운 악수, 서툰 연대의 가능성 텅 빈 길 위의 외침: 소통의 파열음마틴 맥도나(Martin McDonagh) 감독의 2017년 작은 미주리 주 외곽, 잊힌 도로 위의 세 개의 낡은 광고판에서 시작한다. 그의 전작들처럼 이 영화 역시 인간 관계의 기묘한 역학, 폭력과 유머의 불편한 동거, 그리고 도덕적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다. 딸 안젤라의 끔찍한 죽음 이후 일곱 달, 아무런 진척 없는 수사에 분노한 밀드레드 헤이즈(Frances McDormand)는 이 빌보드에 지역 경찰 서장을 정면으로 겨냥한 도발적인 메시지를 내건다. ("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그런데 아직 아무도 체포되지 않았다고?", "어째서입니까, 윌러비 서장?") 이 행위는 단순한 항의나 정의 구현의 요구를 넘어선다. 그것은 꽉 막힌 슬픔과 분노가 터져 나온 세상과의 소.. 2025. 4. 17.